전인지(28)는 한때 인터넷 악플과 루머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스스로를 밑바닥으로 밀어 넣었다”고 자책하며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다. 그랬던 전인지가 올해 들어 한결 밝아졌다. 6월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KPMG 여자 PGA챔피언십 정상에 올랐다. 그는 “그림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은 게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전인지가 화가로 데뷔했다.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본 화랑에서 ‘앵무새, 덤보를 만나다 : 호기심이 작품이 될 때’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앵무새 화가로 유명한 스승 박선미 작가와 협업한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덤보’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귀가 큰 아기 코끼리로 평소 호기심이 많은 전인지의 별명이기도 하다.
전시회에 앞서 서울 서초구의 한 화실에서 만난 전인지는 앞치마를 두르고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즌이 끝나면 보통 친구들 만나 노는데 이번에는 작업실에서 살고 있다. 14시간 동안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간 적도 있고 이곳에서 자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림에 대해 묻자 전인지는 한 그림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덤보는 물음표를 떨어뜨리면서 울고 있잖아요. 작가님을 만날 당시의 제 모습이에요. 하지만 다른 그림 속 덤보는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훨훨 날고 있어요.” 전인지는 “한동안 우승이 없어 초조하고 불안감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림과 박선미 작가님을 통해 마음의 위안과 자신감을 얻었다”며 “그런 긍정적인 영향이 올해 메이저 우승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전인지가 박선미 작가를 만난 건 지난해 12월이다. 박 작가의 남편이 당시 전인지 후원사 중 한 곳의 대표였다. 전인지가 박 작가의 작업실에 초대 받아 그림을 그려보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둘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발전했다. 전인지는 투어 생활 중에도 스케치북과 물감 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스케치를 했고, 한국에 올 때마다 박 작가와 협업을 했다고 한다.
그림을 배우면서 삶과 골프를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떤 날은 ‘아, 망했다’고 절망해요. 그런데 다음 날 작업하다 보면 다시 살아날 때가 있어요. 골프도 마찬가지예요. 18홀 동안 좋은 샷만 날릴 수는 없잖아요. 중요한 건 지금 눈앞의 샷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코스에 서고, 삶을 대하니까 한결 편해졌어요.”
‘화가 전인지’와 ‘프로골퍼 전인지’ 중 어떤 말을 더 듣고 싶어 할까. 전인지는 “둘 다 놓치고 싶지 않다”며 “직업인 골프에 집중을 하되 지금처럼 여유 시간에 틈틈이 그림 작업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평소 스케치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을 해주셨지만 이번에 다시 한 번 그림이 쉽지 않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는 그는 “덤보와 앵무새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평소 좋아했던 추상화에 도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내년 목표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꼽았다. LPGA 통산 4승 중 3승을 메이저 우승으로 채운 전인지는 셰브런 챔피언십이나 AIG 여자오픈 둘 중 하나만 제패하면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전인지는 “사실 둘 다 우승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라며 “가급적 빨리 좋은 소식 전해드리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