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원론적 언급'과 '관치 금융'

박성호 금융부 차장






금융권이 ‘관치’ 논란으로 여전히 시끌시끌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수장이 ‘원론적’이라고 하면서도 ‘민간’ 금융기관들의 인사에 영향을 끼치려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라임펀드 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압박했다. 또 BNK금융의 차기 회장 선임과 관련해서는 “오래된 인사거나, 정치적 편향성이 있거나, 과거 다른 금융기관에서 문제를 일으켜 논란이 됐던 인사가 포함돼 있다면 사외이사가 알아서 걸러주지 않을까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 원장의 말에 “상식적인 얘기” “감독 당국의 입장은 판결로서 의사 결정을 한 것이고 본인이 어떻게 할지는 본인이 잘 알아서 생각해야 될 것”이라며 힘을 보탰다. 관치 금융 논란이 거세지자 대통령까지 나서 ‘인사’는 관치가 아니라고 거들었다. 금융기관의 지배 구조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일이며 관치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관치는 어느 산업에 얼마를 대출해주라고 하는 것”이라고 관치를 정의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금회(부산 지역 금융인 모임), 박근혜 정부의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이명박 정부의 고금회(고려대 출신 금융인) 모두 ‘관치 금융’ 논란을 일으켰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관치가 아닌 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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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발언 자체는 지극히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것은 맞다. 오래되거나 정치적 편향성이 있거나 ‘사고 친’ 인사가 금융기관의 수장이 되는 것은 ‘원론적’으로 옳지 않다. 잘못에 따른 중징계를 받은 인물이 또다시 회장직을 연임하는 것도 ‘상식적’인 선에서 용납이 안 된다.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말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아닌 금융기관의 목줄을 쥐고 있는 당국의 수장의 입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나오게 되면 이는 조언이 아닌 명령이 된다. 이미 BNK금융은 회장 인선 과정을 공개하며 진행하고 있고 우리금융은 법에 보장돼 있는 중징계에 대한 방어권을 사용할지 숙고한 다음 거취를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이 원칙을 얘기했으니 이제는 그들의 결정을 기다리면 된다.

프랑스 언어학자인 뤼시 미셸은 ‘말을 전할 때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신념과 이미지도 함께 전달된다’고 했다. 사람들이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는 단어나 문장 그대로가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뜻과 의지까지 함께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금융 당국 수장의 말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금융정책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금융회사들은 숨겨진 의미와 의지를 파악해 당국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권력자 입장에서는 관치가 아니라고 해도 관치는 그렇게 시작된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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