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회계기준위원회(기준위)의 공식 업무에 ‘질의회신’을 제외하는 방향으로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업계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준위가 기업들의 ‘회계기준 문의(질의회신)’를 판단하지 못한다면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투명성 확보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 뒤에도 회계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질의회신 안건은 결국 기준위로 회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지적이 ‘기우’에 가깝다는 논박도 제기된다.
2일 회계 업계에 따르면 기준위는 이달 13일 회의를 열고 지난 22일 금융위가 입법 예고한 외감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입장을 정리할지 토의할 예정이다.
일부 기준위 위원들이 “시행령 개정으로 기준원에서 접수한 질의회신을 기준위가 검토할 수 있는 길이 막히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개정안엔 기준위의 업무 범위를 ‘회계처리 기준에 관한 사항’에서 ‘회계처리 기준 제·개정 및 해석’으로 바꾸는 안이 담겼다. 기준위 내부에선 “금융위가 시행령 개정 전 기준위 위원들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질의회신은 기업이나 경제단체 등이 ‘회계기준을 어떻게 판단·적용해야 하는지’ 회계당국에 문의하면 이를 기준원 등 회계당국에서 답신해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A기업에서 “이 회계기준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냐”고 질의하면, 이후 기준원 실무진들이 해당 문의를 들여다본다.
만약 단순 회계처리에 대한 질문이라면 ‘신속처리 질의’ 사안으로 분류해 실무자 선에서 곧바로 답신하지만, 깊은 분석이 필요한 사안이라면 ‘정규절차 질의’로 봐 금융감독원·기준원 팀장 및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질의회신 연석회의’를 열게 된다. 만약 연석회의에서도 합의를 내지 못한다면 기준원의 ‘상위 기구’인 기준위에 질의회신 사안을 회부해 최종 결론을 끌어내게 된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질의회신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해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한 회계 전문가는 “질의회신은 ‘회계기준을 세부적으로 집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어 상당히 투명성이 높아야 한다”며 “이런 질의회신을 아무런 통제 없이 기준원장 혼자서 맡으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 회계정책 전문가는 “‘중요한 안건은 기준위에서 다루고 그렇지 않으면 기준원 내부 사무 조직이 다루면 된다’는 식으로 기준원 내규를 만들면 될 것을 왜 굳이 이걸 시행령을 고쳐가면서까지 바꿨는지는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해석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회계감리를 진행하고 있거나 회계기준상 큰 모순이 있어 기준원에 접수되는 질의회신 안건도 많아, 기준위를 아예 업무 범위에서 배제하는 듯한 시행령 개정안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위와 기준원은 “현재 업무 프로세스에 맞춰 법조문을 정리한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기준원은 연간 100여 건의 정규절차 질의, 수 천 건의 신속절차 질의를 소화하고 있다. 이를 일일이 기준위에 보고하는 것은 어려워, 기준원은 판단이 까다로운 질의회신 안건만 기준위에 송부해왔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준원이 하는 업무는 회계기준 ‘해석’과 ‘질의회신’으로 나뉘는데, 이 중 해석은 ‘복잡한 사안’을 검토하는 것이고 질의회신은 정부로 치면 ‘간단한 민원’같은 것”이라며 “실무적으로도 ‘질의회신’으로 온 민원은 기준위가 직접 검토하지 않아 이를 시행령에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질의회신 안건 중에서도 쟁점이 있는 것들은 기준원 내에서 다시 ‘해석’으로 분류해 기준위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시행령이 바뀐다고 해도 현 업무 절차랑 앞으로의 절차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석’과 ‘질의회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학자·실무자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정의될 수 있어 논란이 해소되긴 힘들 전망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회계학 전공 교수는 “‘질의회신’은 회계기준 해석, 그리고 특정 기업의 회계처리에 대한 사실판단을 함께 포괄하는 개념이라 해석보다 정의가 더 넓은 사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