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작가

비밀에 싸인 백만장자 파티광 개츠비

정작 어느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해

닉만 개츠비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줘

타인을 비난하기전에 그 편에 서보길








타인의 삶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권력자들, ‘당신은 죄가 있고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운 시대입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비난과 증오의 말들이 들끓고, 성찰의 언어나 배려의 언어는 찾아보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어지러운 시대에 따스한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위대한 개츠비’의 ‘닉’을 떠올렸습니다. 닉은 조연이지만 이 이야기를 진정으로 힘차게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소설의 절묘한 균형감각은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오지요. 주인공 개츠비는 관찰자 닉의 시선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모습을 아련하게 드러내는 비밀스러운 존재니까요. 닉은 데이지의 남편 톰처럼 속물적이거나 탐욕스럽지도 않고, 개츠비처럼 낭만과 환상에 빠져 객관성을 잃어버리지도 않습니다. 개츠비의 옛사랑 데이지나 그녀의 이기적인 남편 톰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거부가 된 개츠비 주변에 와글거렸으나, 막상 개츠비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남은 것은 오직 닉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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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철저히 오해받고 은근히 따돌림 당하던 개츠비가 처참하게 죽은 뒤, 신비로운 이방인 개츠비와 수많은 군중 사이의 균형추 같은 존재, 닉의 진가는 드러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개츠비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나 모두들 개츠비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침묵합니다. 개츠비는 인근의 모든 사람들의 신분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의 집에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열었지만, 정작 개츠비는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출신이나 이름은 물론 과거 전체가 의심스러운 이방인이었습니다. 개츠비를 의심하는 떠들썩한 소문의 공동체 어디에도 끼지 않고, 닉은 오로지 개츠비를 최대한 편견 없이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그의 이름, 그의 경력, 그의 고향까지도 교묘하게 날조된 것임을 다 알면서도, 개츠비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면서요.

진정한 지성인은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닉은 개츠비의 신분과 이력이 모두 허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개츠비에게 의심스럽다거나 못 믿겠다는 말로 그를 면박주지 않습니다. 누구도 쉽게 판단하거나 의심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신중하게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고 끝내 타인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이해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저는 이 소설에서 그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고통을 주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닉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질투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람.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마다 차분하게 자신의 과오를 돌아볼 줄 아는 닉의 조용한 품격이야말로 ‘위대한 개츠비’를 끝까지 빛나게 하는 힘입니다. 닉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말씀을 평생 기억합니다. "네가 만약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싶어진다면, 이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너처럼 유리한 환경을 타고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말이야." 닉은 자신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 남들보다 훨씬 안전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유리한 위치를 그는 결코 이기적으로 활용하지 않지요.

닉은 타인의 비난으로부터 닉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개츠비의 아버지밖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쓸쓸한 장례식에서 홀로 개츠비의 마지막을 함께 합니다. 모두가 개츠비를 잘 아는 척 했지만 아무도 개츠비의 진정한 편이 되어주지 않았을 때, 닉은 마지막까지 개츠비의 편이 되어준 것입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타인의 편에 서는 것, 끝없이 오해받는 이방인의 편에 서는 것은 단순한 균형감각이 아니라 눈부신 용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타인들’ 때문에 괴로우셨다면, ‘위대한 개츠비’의 닉을 떠올려보시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손쉽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끝내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길로 걸어간 닉처럼, 우리도 고결하고 품위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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