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중앙은행은 왜 물가 목표 2%를 고수하나…전 세계 경제학계 논란 [조지원의 BOK리포트]

한은·연준 등 중앙은행 대부분 물가 2% 목표

전미경제학회서 3%로 조정해야 주장 쏟아져

2%는 물가 자극 않으면서 디플레 우려 없어

현시점에서 목표 바꾸면 기대인플레 불안 확산

9일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9일 서울 시내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인플레이션을 2%까지 낮추기 위해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집한다면 고용 등 경제에 미치는 부담은 더욱 커진다. 2%가 아니라 3%로 목표를 조정해야 한다.” (제이슨 퍼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



“현재 미국 물가는 목표치인 2%보다 높아 연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물가 목표치를 2.5%나 3%로 올리는 것이 나아 보인다.” (데이비드 로머 미국 UC버클리 교수)

“(물가 목표 2%는) 완전한 횡포이고 2%까지 빠르게 도달하려는 과정은 가계와 기업엔 더더욱 심한 횡포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전 세계 경제학계에서 미 연준이 물가안정목표로 삼고 있는 2%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세계 각국 경제학자들이 모인 전미경제학회에서 미 연준의 물가안정목표 2%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면서 논쟁에 불이 붙었다. 미국 내 소비자물가지수(CPI)가 7~8% 수준인 만큼 목표 수준인 2%에 도달하기까지 실물경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가 6일(현지시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2023 전미경제학회에서 인플레이션과 불평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올리언스=김흥록특파원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가 6일(현지시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2023 전미경제학회에서 인플레이션과 불평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뉴올리언스=김흥록특파원


① 일본서도 2% 적합한 수준인지 논의 진행

미국에서 물가 목표 2%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 전미경제학회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를 중심으로 인플레이션 목표를 2%에서 3~4%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PIIE는 지난 25년 동안 주요 선진국들의 자연실업률이 과대 추정된 만큼 물가 목표를 3~4%로 상향 조정하면 중앙은행들이 완전 고용을 유지하기 훨씬 쉽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만 2%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일본 학계에서도 2% 물가 목표가 일본 경제에 적합한 수준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은행 심의위원을 지냈던 시라이 사유리 게이오대 교수는 정책 목표가 경직적으로 설정돼 완화정책이 필요 이상 장기화됐다며 2%를 중심으로 변동범위를 설정하는 등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오키나 유리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도 2% 물가가 잠재성장률에 비춰 바람직한지 점검하는 한편 목표의 경직적 운영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은의 물가안정목표도 2%인 만큼 이번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에서도 물가안정목표 2%를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계를 중심으로 조금씩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 사진제공=한은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 사진제공=한은


② 2% 목표는 연준 2012년, 한은 2016년부터



한은과 연준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2%를 목표로 삼은 것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중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제시하는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를 처음 도입한 이후부터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물가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물가안정목표제의 가장 큰 특징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중앙은행 성과를 쉽게 평가할 수 있고, 경제주체들의 기대 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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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은 2012년 1월 ‘장기목표 및 통화정책전략’을 발표하면서 물가상승률 2%가 미 연준에 부여된 물가안정 책무에 부합한다고 공표했다. 일본은행은 2012년 2월 물가상승률 1%를 목표로 삼았다가 2013년 1월부터 2%로 상향 조정했다. 경제가 안정적인 선진국은 대부분 2%를 목표로 하고, 신흥국은 이보다 높은 3~4% 수준을 설정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한국은 1998년 처음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이후 많은 변화를 거쳤다. 2000년 근원인플레이션율을 물가안정목표 대상 지표로 삼으면서 목표를 3%±1%포인트(2001~2004년)로 유지하다가 2004년 중기물가목표를 도입하면서 2.5~3.5%로 정했다. 2007년 대상 지표를 소비자물가로 다시 바꾸면서 3.0%±0.5%포인트로 변경했다. 변동 허용 폭을 1%포인트로 확대했다가 2.5~3.5%(2013~2015년)를 지나 2016년부터는 2%로 단일 목표치로 제시했다. 2018년부터는 적용 기간을 두지 않고 연 2회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발간하기로 했고 이 제도가 현행까지 유지되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연합뉴스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연합뉴스


③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중요해진 ‘2%’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은 왜 0%나 1%가 아니고 3%도 아닌 2%에 꽂혔을까. 2%라는 수치 자체에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단 여러 여건을 따져봤을 때 2%가 가장 적절한 수준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미 연준은 홈페이지를 통해 장기적으로 2%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하는 이유에 대해 가계·기업이 낮은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을 때 저축·투자 등 경제 활동에 대한 건전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제가 잘 작동할 수 있는 수준이 2%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비춰볼 때 높은 인플레이션은 건전한 경제 활동에 방해가 되며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서 임금 인상이나 가격 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할 수 있다. 결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게 되고 부동산 등 각종 자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경제가 불안할 가능성을 고려한 결과치가 2%다. 주요 선진국의 잠재성장률이 대체로 2% 수준인 점을 감안했다는 분석도 있다.

반대로 디플레이션 가능성 때문에 0%를 목표로 할 수도 없다. 경제학적으로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 위험이 더 큰 데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물가 상승이 불가피한 만큼 0%보다 살짝 높은 수준을 목표로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중앙은행이 제로(0)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한다면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인플레이션으로 디플레이션을 목표로 한다고 해석될 가능성도 있다.

한은에서는 2015년 12월 단일 목표치 2%로 제시하면서 서영경 당시 부총재보(현 금통위원)는 “우리나라의 기조적 인플레이션(underlying inflation)은 금융위기 이후 경제 구조 변화로 인해 2012년을 전후로 2% 내외로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라며 “인구구조 변화, 잠재성장률 둔화, 글로벌화 진전 등으로 수요·공급 측면 모두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3일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3일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④ 경제 여건 바뀌면 재설정할 수 있지만 쉽지 않아

2%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중앙은행들은 금과옥조처럼 지켜 온 2%에 손을 댈 가능성이 있을까. 한은은 예상치 못한 국내외 경제 충격이나 경제 여건 변화 등으로 물가안정목표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정부와 협의를 통해 물가 목표를 다시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은이 당장 물가 목표를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물가가 불안한 현시점에서 목표 수준을 바꾸는 것 자체가 기대인플레이션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하고 목표를 2%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기대인플레이션을 2%로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실제 물가도 2%로 안정된다는 것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목표를 바꾸는 것은 경기 도중 골대를 옮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한은 안팎에서는 물가 목표를 바꾸는 것보다 물가가 점차 안정돼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인하를 논의하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은은 앞서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충분히 수렴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신한 이후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목표 수준에 수렴한다는 증거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고 금통위원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꼭 2.0%까지 떨어지지 않더라도 금리 인하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12월 물가안정목표 설명회에서 이창용 총재는 “물가안정목표제에서 2% 목표는 중장기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근원물가나 기대인플레이션 등을 모두 감안해서 중장기적으로 목표에 수렴하도록 여러 지표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은 내부에서는 근원물가가 올해 하반기 2.3%까지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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