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손철 시그널부장 runiron@sedaily.com
기업 인수합병(M&A)의 명가로 성장한 사모펀드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의 진대제 회장이 “통화 긴축에 따른 고금리가 기업들의 구조 조정을 촉발하면서 하반기 M&A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며 “성장률 하락 등 경기 침체가 기업 구조 조정을 앞당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해 1조 원 넘는 신규 펀드 결성에 성공해 “올해는 조(兆) 단위 대형 딜에도 나서 보겠다”고 투자 의욕을 불태웠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005930)의 최고경영자(CEO)와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진 회장은 최근 삼성전자의 감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1등 전략을 추구하는 삼성이 감산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진 회장은 스카이레이크가 투자한 야놀자가 “내년까지 나스닥 상장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며 두산에서 인수한 솔루스첨단소재(336370)에 대해서는 “향후 3년간 증설 등을 완료해 기업가치를 높인 후 매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2의 반도체로 성장 중인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정부가 리튬·구리 등 원재료 확보를 위한 자원 외교에 적극 나서줄 것도 주문했다.
9일 서울 강남의 스카이레이크빌딩에서 7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진 회장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와 4~5년 전에는 대기업 구조 조정에 따른 M&A가 많았다”면서 “올해는 긴축에 따른 유동성 축소로 하반기부터 중견기업의 경영권 거래가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고금리와 고물가에 환율도 높은 ‘3고 시대’를 맞아 중앙은행과 정부가 모두 긴축에 나서 기업들의 투자 확대는 쉽지 않다”고 진단하며 사모펀드에 기업 인수 등의 기회가 많을 것으로 분석했다.
진 회장은 “이미 매물은 쏟아지고 있다”면서 “다만 매도측이 아직 가격 등 눈높이를 낮추지 않아 거래 성사는 잘 안 되는데 하반기에는 가격이 떨어지며 거래가 활발해질 것이다.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카이레이크는 지난해 1조 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해 12호 블라인드 펀드(투자처를 정하지 않고 조성)를 결성했으며 올해 추가 자금 유치에도 나서 펀딩이 어려워진 사모펀드 업계에서 자금력이 우위에 있다.
스카이레이크가 2017년 600억 원을 투자한 야놀자에 대해 진 회장은 “미국 나스닥 상장을 계속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년까지 상장에 성공하면 엄청난 투자 수익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야놀자 등에 투자한 스카이레이크의 10호 펀드는 내년을 목표로 청산을 추진하는데 최소 20%대의 내부수익률(IRR)을 예상하고 있다.
진 회장은 스카이레이크가 인수한 기업 중 2차전지용 동박 제조사인 솔루스첨단소재의 공동대표를 맡아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지난해 10여 차례 이상 다녀온 해외 출장 대부분은 캐나다·헝가리 등 솔루스첨단소재의 해외 생산 법인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캐나다 퀘벡주에 조만간 공장을 착공하는데 생산 법인이 자리 잡는 3년 후쯤 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면서 “북미에 전기차 생산 공장은 많은데 배터리용 동박 공장은 없어 LG에너지솔루션·SK온·테슬라 등 고객사에서 빨리 생산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가 전체로 수요가 있는 동(銅) 광산이나 리튬 광산을 정부와 기업이 선점하려면 정부가 할 일이 많다”면서 “자원이 많은 국가에 외교 차원에서 공항이나 항구 등 인프라를 지원해주는 대신 길게 보고 자원을 확보한다면 2차전지 산업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료보다 기술력이 중요한 반도체와 달리 2차전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원료 확보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진 회장은 최근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 악화가 일어났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감산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도체는 공급이 5% 많으면 가격이 20~30% 떨어지고, 5% 줄면 20~30% 오른다”면서 “반도체는 경제가 활성화되면 잘 팔리게 돼 있기 때문에 1등의 파워를 지닌 삼성은 감산하지 않을 배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 또한 삼성의 1등 전략이라고 진 회장은 말했다. 그는 “삼성의 이익이 줄어들 정도면 다른 기업은 적자인데 삼성은 가격을 내려 경쟁자를 밀어내면서 호경기를 대비해 투자할 여력이 있다”면서 “삼성전자가 세계 1등이 된 비결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잘하는 메모리반도체 이외에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공정 중 후(後)공정에 투자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후공정이란 주로 패키징과 테스팅을 말하는데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은 주로 전(前) 공정에 해당하는 팹리스(설계)나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반도체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진 회장은 “팹리스 시장은 값싼 부품을 밀고 들어오는 중국이 있고 파운드리는 고객사인 퀄컴이나 엔비디아를 경쟁자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탄탄한 조직 문화가 역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 등의 M&A에 있어 장애가 되는 측면도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진 회장은 “삼성전자처럼 잘 짜인 조직과 그렇지 않은 해외 기업은 문화 차이가 커서 삼성이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