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본래 ‘돌다’에서 유래된 낱말이기에 ‘돌고 돌아야’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2022년 기준 통계청 자료에 나타난 연령대별 자산 규모를 보면 50~59세까지가 2593조 원, 60세 이상이 3658조 원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29세 이하는 고작 156조 원, 30세~39세까지는 928조 원을 보유해 고령층에 자산이 집중돼 있다. 고령층이 보유한 자산이 소비와 소득 재창출 능력이 왕성한 젊은층으로 원활히 이동해야 경제도 살아날 텐데 현재 심각한 돈맥경화 현상을 보인다. 상속세·증여세법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상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업인들의 숙원인 ‘가업상속공제제도’ 개선은 기대에 못 미쳤다. 애초 기획재정부는 중소기업 및 매출액 4000억 원 미만의 중견기업에 적용되던 가업상속공제제도를 매출액 1조 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부자 감세’ ‘부의 대물림’ 프레임에 발목이 잡혀 고작 1000억 원 늘리는 데 그쳤다.
개정법에 따르더라도 증여세와 상속세는 중소·중견기업 주식 시가의 50%에 달해 상속세를 생각하면 노인이 함부로 죽지도 못한다. 상속인이 물려받은 ‘주식’은 현금도 아닌 증권 또는 추상적 권리일 뿐이며 경영을 잘못하면 주가가 추락하고 자기 손으로 가업을 망치게 되는 아주 위험한 물건이다. 이것을 받았다고 국가에 거금을 납부해야 하니 낭패 중의 낭패 아닌가. 출구가 없는 노인들은 이럴 바에는 다 쓰고 죽자는 말들을 한다.
한국 기업이 저평가되는 것은 후진적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낡은 레코드를 계속 틀어대는 사람도 있다.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면 경영 승계가 문제일 뿐이다. 이것을 상속세가 막고 있다.
대주주 사망 이후 주식에 대한 상속세액은 주식의 시가로 평가해 계산할 수밖에 없으므로 상속을 앞둔 기업의 대주주는 주가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 대주주가 주가를 올리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주가가 오를 수 없다. 배당도 어렵다. 예금과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을 넘으면 금융종합소득세가 부과되는데 10억 원이 넘으면 최고세율 45%에 지방세 10%까지를 더해 49.5%가 된다. 소득의 반 정도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배당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하기 쉽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주가도 오르지 않고 배당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
일본도 가업승계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낫다. 일본에서 가업승계가 어려운 이유는 인구소멸이다. 지방 소도시 소재 기업은 자녀들이 대를 이을 생각이 없어 후계자를 찾는 광고를 해야 할 형편이다. 한국은 그래도 아직은 상속세가 가장 큰 장애이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보다 인구감소 속도가 빨라 좀 있으면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을 거저 줘도 싫다는 시대가 온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아무도 잃지 않는다. 국가 세수는 증가하고 기업은 안정적으로 승계돼 일자리가 유지되며 경제는 성장한다. 상속받은 주식을 처분할 때 세금을 내는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