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7일 귀국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을 체포한 뒤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김 전 회장이 해외로 도피한 지 8개월 만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전혀 모른다”며 이른바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전환사채(CB) 발행 등 쌍방울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중심으로 각종 의혹을 추궁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는 이날 김 전 회장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횡령), 자본시장법 위반, 증거인멸,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밤 늦게까지 진행된 조사에서 검찰은 김 전 회장을 상대로 횡령 및 배임 등에 대한 입장을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우선 체포 시한인 48시간 내에 관련 의혹을 들여다본 뒤 이르면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 맞서 사전에 접촉해온 법무법인 광장의 유재만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 등을 이날 접견한 뒤 최종 선임했다. 유 변호사는 이미 4명 이상의 팀을 꾸린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김 전 회장은 본인을 둘러싼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이 대표와 전화한 적도 없고 전화번호도 모르고 변호사비를 대납한 적도 없다”며 “검찰에서 나중에 다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날 법정에서는 앞서 이 대표와 김 전 회장이 주장한 내용과 반대되는 법정 진술이 나오기도 했다. 수원지법 형사11부(신진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화영 전 킨텍스 대표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 공판에서 쌍방울그룹 비서실장을 지낸 A 씨는 “김성태 전 회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가까운 관계였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을 상대로 쌍방울그룹이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100억 원씩 총 200억 원 규모의 CB를 발행하는 등의 수상한 자금 흐름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쌍방울그룹을 둘러싼 CB 발행 등 수상한 자금 거래 내역을 분석해 검찰에 전달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돈의 흐름이 결국 이 대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물론 쌍방울이 2018~2019년 대북 사업권을 따내는 조건으로 중국으로 640만 달러를 밀반출해 북한에 건넨 혐의와도 맥이 닿아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김 전 회장은 또 이 대표의 측근인 이 전 대표가 2019년 6월~2022년 8월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킨텍스 대표로 재직했을 당시 3억여 원의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대북 경제협력 사업 지원을 받는 대가로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쌍방울의 자금 흐름을 쫓기 위한 ‘키맨’으로 꼽히는 재경총괄본부장 김모 씨의 송환 시점에도 관심이 모인다. 김 전 회장 여동생의 전 남편이자 회사 ‘금고지기’로 알려진 그가 그룹의 재무 흐름 전반을 파악하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5월 말부터 태국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김 씨는 지난달 초 태국 파타야에서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태국 현지 법원에 송환 거부 소송을 제기하면서 신병 확보가 난항에 빠진 상태다. 이에 따라 김 씨의 송환 시점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 넘게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전반적인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매제였던 그를 통해 각종 의혹 규명에 활로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김 씨는 이혼한 뒤 김 전 회장과의 관계도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씨가 자진 귀국할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찾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