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동부 전략적 요충지인 바흐무트 주민들은 북쪽으로 불과 15㎞ 떨어진 솔레다르에서 러시아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고향에 남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17일(현지시간) 바흐무트를 찾은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이 지역에 위치한 바흐무티우카 강 인근에서 만난 주민 드미트로는 왜 아직도 바흐무트에 남아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는 “이곳은 내 땅이다. 나는 떠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드미트로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 테이프가 각각 붙어있는 목발을 짚은 채 한쪽 다리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러시아는 지난 몇 달간 바흐무트를 공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솔레다르로 눈을 돌렸다. 현재 바흐무트에서는 전투가 벌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솔레다르에서 완전히 승리할 경우 러시아군이 이곳으로까지 내려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이에 바흐무트의 주민들이 대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이곳에 남은 주민들은 바흐무트 북동쪽에 있는 러시아군을 피해 서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난로를 때기 위해 해바라기 수확 후 남은 잔여물을 받거나 우물에서 물을 얻기 위해 병을 들고 줄을 선 주민들도 볼 수 있다.
일부 상인들은 바흐무트로 통하는 몇 안 되는 도로에 테이블을 펼쳐 놓고 생선과 빵, 구운 고기와 커피, 차 등을 팔고 있다.
자신을 ‘세르히’라고만 소개한 한 남성은 CNN 기자에게 도시를 떠날 여유가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군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음식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군인으로 복무한 세르히는 원래 국가 연금을 받아야 하지만 전쟁으로 공공 서비스가 마비돼 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침례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를 만난 갈리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와 바흐무트를 구하고 우크라이나 전역에 평화를 달라고 기도했다”고 얘기했다.
러시아군을 피해 바흐무트로 도망쳐 왔지만, 또다시 러시아군에게 공격 당할까봐 불안에 떨어야 하는 주민도 있다.
스뱌틀라나는 지난해 봄 리만에서 친구의 집이 있는 바흐무트로 도망왔다. 리만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군이 탈환에 성공하기 전까지 몇 달간 러시아에 점령당했다.
얼룩진 황갈색 스웨터와 밤색 모자를 쓰고 거리를 배회하던 스뱌틀라나는 솔레다르가 러시아의 손에 들어갈 경우 바흐무트가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하며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답했다.
바흐무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러시아 진지를 향해 사격 준비를 하던 한 우크라이나 군인은 “바흐무트의 상황은 어렵다”면서도 “우크라이나 군대는 강하며, 우리는 바흐무트를 위해 싸울 것이다”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러시아 민간 용병단 와그너 그룹을 이끄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최근 솔레다르를 장악했다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를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