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를 출입하면서 놀랐던 것은 국내 보험사 수가 손해보험사 19개(준회원사와 재보험사인 코리안리 포함), 생명보험사 23개로 매우 많다는 점과 보험 유관 기관들도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올해 들어서만 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보험개발원·보험연구원에서 신년 간담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코로나 기간 열리지 못했던 오프라인 행사가 오랜만에 진행되는 것이고 기관들이 각기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지만 ‘한 업권에서 이렇게 많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보험 업계가 위기를 맞았다는 이야기는 수년째 계속되지만 덩치만 크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노력은 훨씬 더딘 것처럼 느껴진다. 금융업은 기본적으로 당국의 규제가 강해 빠른 변화가 쉽지 않은 곳이라고 하지만 보험업은 업권 특성 등의 이유로 금융권 중에서도 가장 변화에 더딘 곳으로 꼽힌다. 보험 업계 내부에서도 보험사가 만약 일반 기업이었으면 망하는 곳이 진작에 나왔을 것이고 연명에 급급한 ‘좀비’ 회사들도 많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자금 유동성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에는 매월 들어오는 보험료를 받아 보험금을 지급하며 겨우 버티는 보험사들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국내 보험 산업이 이미 포화 상태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과거처럼 보험 시장이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험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외국계 보험사들이 한국을 하나둘 떠난 시점부터 이미 우리나라 보험 시장의 성장은 멈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와 함께 정리도 필연적인 상황이다.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KDB생명과 MG손해보험 외에도 중소형 보험사들이 꾸준히 잠재 매물로 언급되고 있다.
2020년 3월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이 당시 취임하면서 보험사들의 ‘질서 있는 퇴출’을 언급해 화제가 됐었다. “경쟁에서 도태된 회사의 질서 있는 퇴출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안 원장이 연임에 성공해 3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과연 보험사들의 ‘질서 있는 퇴출’이 이뤄질 수 있는지, 무엇보다 그런 의지가 보험 업계 관계자들에게 있는지 궁금하다. ‘망하지는 않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