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탄탄한 기업철학이 장수기업 만드는 뿌리죠"

■'한국엔 기업 철학이 없다' 저자 박승두

'소비자는 왕' 말보다 실천 옮기고

고객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韓서는 기업 자체원칙 가진곳 없어

경쟁 중시하는 교육체계부터 손보길

박승두 두림비트컨설팅 대표박승두 두림비트컨설팅 대표




“제가 제너럴일렉트릭(GE) 계열사인 GE플라스틱에 다닐 때 한국에 공장을 짓기 위한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혼자 비행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어떻게 10시간 넘게 가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끊어준 표를 보니 비즈니스석도 아닌 일등석이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8시간 이상 걸리는 곳을 갈 때는 지위고하 상관없이 일등석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죠.”



최근 ‘한국엔 기업 철학이 없다’를 출간한 박승두(67·사진) 두림비트컨설팅 대표는 18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카페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을 세우고 이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박 대표는 현재 도레이케미칼의 전신 격인 제일합섬에서 근무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GE플라스틱·타임워너를 거쳐 BMG 한국법인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경영자의 의지를 반영하는 경영 철학은 존재해도 나아가야 할 기업의 정체성과 방향성·원칙 등을 담은 기업 철학을 가진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뿌리가 든든하지 않으니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면 기업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는 “기업 철학은 구성원들이 회사의 정체성에 대해 공감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며 “경영 철학이 기업 철학을 벗어나면 회사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독일 미디어 그룹인 베텔스만을 기업 철학의 전형으로 꼽는다. 베텔스만은 BMG뮤직, 세계 최대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를 계열사로 둔 200년 역사의 엔터테인먼트 그룹이다. 이 정도면 대도시에 거대하고 화려한 사옥을 지을 만도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본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월세로 있다. 그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드웨어인 땅이나 건물을 소유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사옥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이유”라며 “조그만 돈을 벌어도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지으려는 우리 기업들과 전혀 다른 행보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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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두 두림비트컨설팅 대표박승두 두림비트컨설팅 대표


기업 철학은 고객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말로만 ‘소비자는 왕’이라고 떠들지 말고 실천으로 담보해야 한다. 고객과 약속했다면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지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길이라는 의미다. 아마존은 한때 고객들의 아이폰 선(先)주문 물량을 제때 공급할 수 없게 될 위기에 처하자 시중에서 팔고 있는 물량을 50%나 비싸게 사들여 보낸 적이 있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고객에 대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한국 기업이 아마존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마 마진을 조금 줄이되 손해는 보지 않는 선에서 처리했겠죠. 기업 철학을 제대로 지킨 기업만이 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

기업 철학이 없다 보니 다른 기업에 대한 벤치마킹도 수박 겉핥기로 이뤄진다. 일본의 ‘돈키호테’를 벤치마킹한 대기업 쇼핑점이 2년 만에 문을 닫는 참담한 실패를 맛본 게 대표적이다. 최근 기업 현장에서 거론되고 있는 원가 절감 열풍도 마찬가지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원가 절감에 잇따라 나서자 우리나라 기업, 심지어 기술 기업들까지 원가를 줄이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은 정책과 같은 껍데기가 아니라 기업의 알맹이인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철학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는 우선 자기 자신의 경험을 강조한다. 다른 기업의 경험을 참조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것이 될 수는 없다. 오직 스스로 경험해야만 자신의 철학을 세울 수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지론이다. ‘사랑’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자신의 직원, 자신이 만든 상품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고객을 사랑할까. 고객을 외면하는데 어떻게 고객 만족을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경쟁과 생존만을 가르치는 교육 풍토 속에서 자란 학생들이 있는 한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 박 대표가 제대로 된 기업 철학을 가지려면 교육 시스템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그는 “우리나라 학교는 학생들에게 남보다 더 높고 더 좋은 곳에 가는 것만 가르칠 뿐 기업 윤리를 언급하지는 않는다”며 “이래서는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도, 장수 기업이 나올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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