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대안’으로 인기가 높았던 리모델링 사업이 새 정부 들어 시들해지고 있다.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과 분양가상한제 등 규제 완화에 적극 나서며 재건축의 문턱이 낮아지자 리모델링 추진 단지의 증가세가 주춤한 모습이다.
24일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136곳(10만 9986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같은 해 6월 131곳(10만 4850가구)에서 고작 5곳(5136가구) 늘어난 것이다. 이는 서울시와 경기도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리모델링 시범 사업 단지와 조합설립을 마치거나 조합설립 인가를 앞둔 단지를 집계한 수치다.
지난해 하반기 서울에서는 송파구 가락금호(915가구), 가락 쌍용2차(492가구), 거여4단지(546가구) 등 3개 노후 단지가 조합설립을 마쳤다. 이 밖에도 경기 부천시 상동 한아름 현대1차(792가구), 안양 평촌 초원2단지 대림(1035가구), 경남 창원시 대동중앙 아파트(1040가구)도 리모델링 사업을 위한 첫발을 뗐다. 반면 서울 강동구의 첫 리모델링 단지로 주목받던 둔촌 프라자아파트(354가구)는 2006년 리모델링 조합설립 이후 16년 만에 사업을 철회하기로 했다.
이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급증했던 문재인 정부 시절과는 상반된 시장 상황이다. 문재인 정권 기간에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2021년 12월 94곳(6만 9085가구)에서 이듬해 6월 131곳(10만 4850가구)으로 37곳(3만 5765가구) 늘어났다. 재건축보다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는 리모델링 사업의 장점이 부각되며 추진 단지가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로 분위기는 반전됐다. 지난해 분양가상한제·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안전진단 등 ‘재건축 3대 대못’ 제거로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리모델링 조합설립을 위한 주민 동의율(66.7%) 확보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특히 부동산 경기 침체까지 더해지며 사업 추진에 악재로 작용했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리모델링 찬성도, 반대도 아닌 주민들이 정부 정책과 시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의사 결정을 망설이고 있다”고 전했다.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은 지지부진한 탓에 시장의 실망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리모델링추진법 제정 △안전진단 및 안전성 평가 절차 개선 △리모델링 수직·수평 증축 기준 정비 등을 공약했지만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3일 국토부가 발표한 올해 업무 보고에서 리모델링 제도 개선 관련 내용은 담기지 않았고 리모델링 추진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별법 제정안은 국회에 머물러 있을 뿐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다.
이 위원장은 “정부에서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같이 활성화해야 주민들이 단지별 상황에 따라 어떤 사업이 유리한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데 현재는 재건축에 쏠려 있는 게 사실”이라며 “기존 용적률이 높은 단지는 재건축 추진 시 오히려 세대 수나 면적이 줄어들 수 있어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