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달러 강세 여파에 부진했던 신흥시장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중단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며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로 신흥국에 대한 투자 심리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최근 신흥시장에 유입된 투자자금만 하루 11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에 달할 정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제금융협회(IIF)의 21개 신흥국 국경간 자본흐름 추적 자료를 인용해 이번 주 신흥국 주식·채권 시장에 하루 11억 달러의 투자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하루 11억 달러 순유입은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해제됐던 2020년 말~2021년 초를 제외하면 최근 20년래 가장 큰 규모다.
24개 신흥시장 증시를 추적하는 모간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이머징마켓(EM) 지수도 이날 1052.46를 기록해 지난해 최저점이었던 10월 24일(842.76) 대비 24.8%나 올랐다. 지난해만 해도 급격한 외국인 자금 유출을 겪던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변화하는 양상이라고 FT는 평가했다.
이 같은 추세 반전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금리인상 중단이 임박했다는 기대감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3개월만에 6%대로 내려오는 등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면서 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위원회(Fed)가 한 두 차례 0.25%포인트의 추가 금리인상 후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강세를 보였던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26일 기준 101.839로 104.518였던 3일 대비 2.56% 떨어졌다. FT는 "시장 참가자들은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을 곧 중단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이 점이 신흥시장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주요국, 특히 미국의 금리인상이 중단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해 신흥국의 투자 매력이 높아진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도 신흥시장으로 돈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중국 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전망에 신흥국 투자가 활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FT는 "신흥국에 하루동안 순유입된 11억 달러 중 중국에 들어간 금액은 8억 달러에 달한다"며 "다른 신흥국들이 중국의 (방역 완화) 움직임에 따른 연쇄 효과로 혜택을 보고 있다"고 평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올해 석유 수요 증가분의 절반 가까이가 중국에서 나올 것"이라며 올해 전세계 석유 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다만 신흥국에 불고 있는 훈풍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장의 예측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JP모건은 올해 신흥국 경제성장률이 선진국 성장률을 1.4%포인트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폴 그리어 피텔리티인터내셔널 신흥시장 부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올해 1~2분기엔 중국이 성장할 것이고 여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이미 (신흥국 증시는) 충분히 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막대한 부채 및 재정부담, 인구감소 등의 인구통계학적 영향이 신흥국의 잠재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