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절 긴급조치 1·4호로 피해를 본 국민에게 국가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정부 배상 책임을 인정한 지난해 8월과 같은 판단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974년 긴급조치 1·4호 위반으로 체포됐던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을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해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당시 체포 후 수개월 동안 구속됐으나 기소 없이 풀려났다.
1·2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A씨 청구는 기각했다. 그가 2008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돼 보상금을 받고도 시효 3년을 넘긴 2019년에서야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대법원은 A씨 사건에서 국가 불법행위에 따른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는 A씨 상고심이 계류 중이던 지난해 8월 대법원의 판단과 같은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법률·제도적 변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만큼 원고가 소를 제기할 때까지도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 사유’가 있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와 별도로 19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B씨에 대해서도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B씨는 긴급조치 해제로 1980년 면소 판결을 받자 2013년 소송을 제기했지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보상을 받아 재판상 화해로 간주한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에 B씨는 헌법소원을 제기해 ‘보상금 수령을 재판상 화해로 간주하는 민주화보상법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2019년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은 2020년 종전 판례에 따라 B씨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지난해 8월 전원합의체가 판례를 변경함에 따라 대법원도 B씨 사건을 원심 법원에 돌려보내 다시 심리토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