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임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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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그 절에 피는 꽃이 한두 가지랴마는, 선운사 하면 동백꽃이니 숨은 꽃들이 서운도 할 것이다. 봄가을 따스한 볕에 다투어 피는 꽃이야 지천이지마는, 눈 속에 피는 동백꽃 붉은 입술을 알기나 알아 시샘하겠는가. 질 때 지더라도 분분히 날리기 싫어 모가지째 툭 떨어지니, 꽃 보러 와서 듣고 가는 사연이 발에 채일 것이다. 꽃 지는 건 쉬워도 님 잊는 건 한참이라지만, 꽃 진 자리마다 씨방 부푸는 것을 왜 못 보시나, 모른 척 하시나. 꽃도 님도 떠나간 뒤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영영 한참이라네.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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