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력한 대책에도 보이스피싱 범죄가 날로 지능화하는 가운데 112에 접수된 보이스피싱 신고 10건 중 9건은 경찰을 통한 정식 피해 접수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사건을 접수받아야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조한 피해 접수율은 더 많은 범죄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보이스피싱 등 신종 금융 사기 범죄가 장소를 옮겨가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수사 당국의 빠른 범죄 인지와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현재 보이스피싱 112 범죄 신고 27만 2624건 가운데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7.51%(2만 479건)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1년도 보이스피싱 신고는 32만 1123건에 달했지만 피해자가 경찰에 사건을 신고·접수한 건수는 3만 982건(9.64%)에 그쳤다.
피해 접수가 되지 않은 사건의 경우 중복·오인 신고도 많지만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신고를 하지 않아 수사가 개시되지 못한 사례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역시 피해자의 신고 접수가 제때 이뤄져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만큼 저조한 피해 접수가 아쉽다는 입장이다.
경제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의 한 관계자는 “보이스피싱과 전세사기 등 신종 사기 범죄는 살인·강도 등 전통적인 범죄에 비해 피해가 빠르게 확산된다”며 “범인들이 웹사이트나 전화번호 등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 피해 규모가 광범위하게 커질 수 있어 범죄를 초기에 인지하고 조직 수뇌부를 검거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신종 사기 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만큼 관련 범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전담기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보이스피싱만 해도 유관기관이 검찰과 경찰·금융정보분석원·금융감독원·한국인터넷진흥원 등으로 산재해 있다. 법 집행기관 중 하나인 경찰 역시 시도 경찰청별로 사건을 다루다보니 관할 구역의 한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신종 사기 범죄의 총책과 윗선들이 활동 무대를 점차 해외로 옮기면서 수사 범위 역시 광범위해지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콜센터의 87.6%가 중국에 몰려 있다. 이어 필리핀(6.2%), 태국 (3.7%) 순이었다.
서준배 경찰대 교수는 “신종 사기 범죄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건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 기준과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라며 “사건이 전국 지방청과 개별 수사관에게 뿔뿔이 흩어져 있다보니 체계적이고 신속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