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안심하기 이른 상황이다. 통화 당국인 한국은행은 대외적으로 밝히기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국내 물가도 점차 둔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다만 공공요금 인상이 몰리면서 미국보다 물가 둔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점,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유가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일 한은 조사국이 작성한 ‘물가 둔화 흐름 점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공급 측 물가 압력이 완화되면서 지난해 중반 이후 오름세가 둔화하고 있다.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우리나라도 디스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한은은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2%로 전월(5.0%) 대비 상승 폭이 커졌지만 3월 이후에는 물가 상승 둔화가 점차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이 뒤늦게 반영되면서 물가 둔화 속도를 늦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리오프닝으로 유가가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중국 경제가 회복하면 관광객의 국내 유입 등으로 우리 경제는 회복하겠지만 물가 부담은 커지면서 경제에 양면적 효과를 주게 된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목하고 있는 중간재도 수요 증가로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한은 역시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향후 물가 리스크에 대해 “중국의 경제 상황과 맞물려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라고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관심도 중국에 쏠려 있다. 이 총재는 이달 1일 열린 한은과 대한상공회의소의 공동 세미나에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에게 “한국은 석유 수입이 많아 유가가 중요하다”며 “중국 경제가 너무 빨리 회복하면 석유 수요가 늘면서 유가가 오를 수 있다고 보느냐”고 직접 물었다. 이에 신 국장이 원유 의존도가 낮아진 만큼 크게 우려할 것은 아니라고 답했지만 이 총재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드러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