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미술 다시 보기]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예수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합스부르크 왕가가 스페인을 지배하던 16~17세기는 스페인의 문화적 황금 세기로 불린다. 이 시기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가들이 출현했다. 미술의 영역에서는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단연코 스페인 황금 세기를 표상하는 화가라 할 수 있다. 필리페 4세의 궁정 화가로 활동한 그는 스페인의 독자적 회화 전통을 정립한 화가로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의 회화는 기법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17세기 유럽 화단을 지배했던 바로크 양식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동시대 플랑드르 지방을 기반으로 활동한 루벤스의 회화 양식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화려하지도 않고 격정적인 감정 묘사나 역동적인 형식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그는 복잡한 회화적 상징이나 난해한 알레고리가 배제된 솔직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선호했는데 특히 보데곤 장르로 불리는 그의 초기 그림들에서 이러한 특징들이 잘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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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회화의 가치는 주제의 고귀함이 아닌 회화 자체의 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일상생활의 모습을 소재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제작하고자 했다. 보데곤 장르는 선술집이나 요리 공간을 묘사하며 서민의 생활상을 다룬 그림을 지칭하는 용어다. 젊은 시절 세비야에서 활동했던 벨라스케스는 보데곤 장르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미학관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1618년 그가 만 19세가 되던 해에 완성한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예수’는 하나의 화면 속에 정물화와 풍속화, 그리고 종교화적 요소가 결합돼 있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 그림이다. 화면 우측에 명상적이고 관조적인 삶의 자세를 강조한 성경 속 ‘베다니의 두 자매 이야기’가 액자 구조, 즉 그림 속에 그림이 들어가 있는 형태로 배치돼 있고 화면 전면에는 현실에서의 생활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신성한 주제를 실재하는 삶의 현장을 통해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는 이 그림은 바로크 미학의 혁신적인 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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