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수학능력시험 응시자 수는 41만 명 대로 추정된다. 수년 전 65만 명 수준에서 급감했다. 이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후의 출산율 하락이 20년이 지난 지금 불러온 결과다. 출산율 급락이 2010년대 중반부터 다시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10여 년 후 대입 응시자는 25만명 수준으로 줄어든다. 지금 은퇴 연령기에 접어드는 사람들의 한 해 출생자는 100만 명 수준이었다. 100만 명이 은퇴하고 25만 명이 유입되면 경제활동인구는 한 해 75만 명씩 감소한다.
경제활동인구가 소비의 원동력이다. 일자리가 있어야 안정적으로 돈을 쓸 수 있고, 심지어 빚을 내서라도 소비할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가 4분의1로 줄어들 국가에서 무슨 소비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기업들의 투자도 없다. 소비가 없으면 물건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출산율 하락에 따른 경제 저성장의 극단적인 사례가 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도 형편은 비슷하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성장의 도구들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했다. 환경을 해치고, 자원들을 고갈시키며 성장해 왔다. 더 이상 그렇게 쉬운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류는 성장 대신 지속성을 선택했다. 지금 회자되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도 지속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다.
지속성을 얻기 위해 한국인이 해야 할 것은 극적인 노동 생산성의 개선이다.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스마트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네 사람을 대신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 그런데 그 도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하는 인공지능 업체(Open AI)는 챗봇(ChatGPT)을 소개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식이다. 그 대답이 구글의 검색보다 확실히 정확하다. 질문자가 궁금해하는 것을 더 잘 찾는 능력은 인공지능(AI)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을 인수합병(M&A)하려는 관심이 증폭되고, 관련 주식들의 주가도 급등했다.
내가 대학교수지만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인다. 수십 명을 앉혀 놓고 가르칠 때 학생들마다 지적 상태나 궁금증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교수는 한 가지 방식으로 강의할 수밖에 없다. 기계라면 각 학생을 맞춤형으로 돌 봐 줄 수 있을 것이다.
창의는 지식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을 때 시작된다. 그릇에 물이 차야 넘치는 것처럼 말이다. 교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갈 때 도제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뿐이다. 지식을 일정 수준까지 채울 때는 인공지능이 학생을 안내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나는 수업을 시험으로 시작한다. 예습을 하지 않은 학생은 버틸 수 없다. 물론 예습을 위한 콘텐츠는 확실히 준비돼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통한 맞춤형 안내 기능이 더해지면 더 완벽해질 것이다. 이미 예습이 된 학생들이므로 수업시간에는 새로운 경지를 얘기한다. 때로는 놀라운 것들이 발견된다. 기계가 인간을 놀랍도록 스마트하게 만들 수 있는 장면이다.
얼마전 미국이 금리를 올리며 달러 강세를 유도할 때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며 한국이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다. 외환보유액이 4,300억 달러나 쌓여 있는데도 말이다. 유사시 핫머니는 내구성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이탈한다. 그 내구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부존자원과 내수 규모가 대표적인데 한국은 취약하다. 여기에 높은 교역 의존도 및 에너지 수입 부담은 추가적인 약점이다. 결국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역량 있는 인적자원 밖에 없다. 교육의 혁신이 더 시급해지는 이유다.
그 동안 주입식 교육을 비난하며 참교육을 외쳤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참교육이 ‘공부를 안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육의 현장에 인공지능이라는 스마트한 선생을 초대해 우리 아이들이 쉽게 탐구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고, 젊은이들이 좀 더 이른 시기에 이웃들을 위한 비전을 세울 수 있도록 하자. 그럴 때 출산율도 회복되지 않을까.
2021년 기준 56.8%에 머물고 있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참여율도 높여야 한다. 그들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그렇다면 초고속 인터넷, 인공지능을 투자의 관심대상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