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본시장에 가장 뜨거운 이슈는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041510))입니다. 하이브(352820)가 SM엔터 인수에 나선다는 소식에 연예계는 물론 금융투자업계 역시 큰 주목을 받았죠. 하지만 점차 인수전은 진흙탕 싸움이 돼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SM엔터의 성장 방향과 미래 전략에 대한 논의는 희미해졌고 ‘머니싸움’만 주목 받는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선데이머니카페에서는 일주일 간 SM엔터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활활 타올랐던 SM엔터…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시작은 카카오(035720)였습니다. 2020년부터 SM엔터 인수를 추진해 온 카카오는 공시를 통해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로 SM엔터의 보통주 신주 123만 주를 1주당 9만 1000원에 발행, 취득한다고 밝혔습니다. 총 취득 대금은 1119억 원에 달합니다. 전환사채 1052억 원어치를 취득하기로 하면서 SM엔터 지분 9.05%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다음 타자는 하이브였습니다. 지난10일 하이브는 이수만이 보유하고 있는 SM엔터의 지분 14.8%를 총 4228억 원에 사들였습니다. 주당 가액은 12만 원에 달했죠. 직전 거래일인 9일 종가가 9만 8500원이었는데, 이보다 21.8%나 높은 가격이죠. 하이브는 이 전 총괄의 지분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공개매수에 나섰죠. 이 전 총괄에게 지분을 인수한 가액인 12만 원을 공개매수 단가로 제시하면서 총 595만 1826주를 매수하겠다고 했습니다. 25%의 지분을 사들이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전 총괄에게 인수한 14.8%에 공개매수로 사들이는 25%까지 합쳐지면 하이브의 SM엔터 지분은 총 39.8%로 늘어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가능해지게 됩니다.
이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SM엔터 주가는 하루만에 16.4% 올라 11만 4700원을 기록했습니다. 하이브가 12만 원의 공개매수 단가를 제시한 만큼 당분간 12만 원 언저리에서 주가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주당 19만 원에 공개매수 작업이 진행 중인 오스템임플란트의 주가가 19만 원을 돌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수만+하이브’ 대 ‘SM엔터 현 경영진+카카오+얼라인파트너스’라는 경영권 분쟁 구도가 형성되면서입니다. 카카오가 하이브의 공개매수 단가보다 높은 수준에서 본격적인 공개매수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카카오가 공개매수를 위해 자금 확보 방안을 고민 중이라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공개매수 작업을 진행할 증권사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기도 했죠. 결국 SM엔터의 주가는 12만 원을 넘어 13만 원까지 돌파했습니다. 카카오가 하이브보다 높은 공개매수 단가를 제시할 수밖에 없는데다 한 애널리스트는 14만 1000원이라는 구체적인 단가를 제시하면서 시장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반대로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 원을 넘어서자 하이브 주가는 고꾸라졌습니다. 14일 기준 20만 원을 넘었던 하이브 주가는 15일 2.3%, 16일 3.4%, 17일 4.4% 하락해 18만 2000원까지 주가가 추락했습니다.
SM엔터가 핵심 자회사인 디어유를 비롯해 다른 자회사나 자산을 매각할 수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SM엔터는 즉각 디어유는 매각 검토 대상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비핵심자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죠. 디어유는 팬덤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인데, SM엔터의 본업과 맥락을 같이 할 뿐 아니라 시가총액이 1조 1000억 원에 달하는 알짜배기 자회사입니다. SM엔터가 디어유까지 판다는 설이 돌자 일각에서는 SM엔터가 보유한 일부 자산을 활용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진흙탕 싸움 돼가는 ‘쩐(錢)의 전쟁’…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여기까지가 SM엔터를 둘러싸고 일주일 동안 벌어진 일입니다. 초대형 연예기획사가 또 다른 초대형 연예기획사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후끈 달아올랐던 시장의 분위기가 경영권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온갖 설과 의혹이 난무했습니다.
‘쩐의 전쟁’을 벌이는 듯 했으나 갑자기 두 무리의 싸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성수 SM엔터 공동대표가 이수만 프로듀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죠. 이 대표는 “2019년 홍콩에 CT플래닝리미티드(CTP)라는 해외판 라이크 기획”을 설립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웨이션브이, 에스파 등 SM엔터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반 유통을 CTP를 통해 진행하게 해 SM과 해외 레이블사 사이의 정산 전 6%를 선취했다는 거죠.
역외탈세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이수만 전 총괄이 국세청의 감시망을 피해 해외에 제2의 라이크기획을 설립해 운영해왔다는 겁니다. 이에 국세청은 이 전 총괄의 탈세 의혹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 총괄은 이성수 대표의 역외탈세 폭로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폭로에 앞장 선 이 전 대표를 향해 ‘마음이 아프다’라는 감성 섞인 입장만 내놨습니다. 이수만 전 총괄은 “상처(喪妻)한 아내의 조카로서 네 살 때부터 봐왔다”라며 “열아홉 살에 SM엔터에 들어와 팬 관리 업무로 시작해 함께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버님이 목사인 가정에서 자란 착한 조카다. 마음이 아프다”라고 하기도 했죠.
이성수 대표는 하이브를 향해서도 “CTP의 위법 요소를 알고도 동조나 묵인한 것인지, 만약 모르고 계약했다면 1조 원 이상의 메가딜을 진행하면서 실사조차 하지 않아 이런 중요한 사항을 놓치게 된 것을 주주와 임직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또 2차 성명발표 때는 이수만과 하이브를 향해 “지금의 하이브는 이수만의 구원자지 SM엔터의 구원자가 아니다”라며 “하이브가 SM엔터 이사회 및 경영진과 한 차례의 협의도 없이 최대주주 지분을 매수하고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것은 적대적 인수합병(M&A)”라고 비판했습니다.
가처분 결과·추가 공개매수·공정위 심사…앞으로 변수는
앞으로 남은 변수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시장의 관심은 이수만 전 총괄이 제기한 가처분 인용 여부에 쏠립니다. 서울동부지법은 22일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가 제기한 SM 신주·전환사채 발행 금지에 대한 가처분 심문기일을 엽니다. 이 전 총괄 측은 SM엔터 현 경영진이 카카오에 제3자 방식으로 약 1119억 원 상당의 신주와 1052억 원 상당의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결의한 것이 경영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위법이라는 입장입니다. 가처분 결과는 하이브의 공개매수일 마감(2월 28일) 이후와 카카오의 신주 발행일(3월 6일) 사이인 3월 초에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가처분이 인용되면 신주 발행이 취소되는 만큼 카카오의 인수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하이브든 카카오든 SM엔터를 연결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지분 30%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수만 전 총괄의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카카오가 지분 9.05% 없이 SM엔터 지분 30%를 다 살려면 시장에서는 1조 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카카오는 사실상 SM엔터 인수전에서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가처분이 기각된다면 하이브의 공개매수가 실패했다는 전제로 카카오가 추가 지분 매입에 나설 수 있습니다. 카카오엔터는 지난 1월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사우디국부펀드(PIF)로부터 1조2000억 원을 조달한 바 있습니다.
하이브나 카카오 누가 주인이 되든 SM엔터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공정위원회의 경쟁심사도 통과해야 합니다. 자산 또는 매출액이 3000억 원 이상인 회사가 자산 또는 매출액이 300억 원 이상인 상장 회사 주식을 15% 이상 취득하는 경우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해야 합니다. 기업결합 신고가 접수되면 공정위는 두 회사의 결합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이 제한되지 않는지, 시장 지배력을 획득해 남용할 우려가 없는지 등을 따집니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써클차트 기준 주요 엔터사별 작년 앨범판매량 비중은 하이브 26.8%, SM 19.1%, 카카오엔터 7.6%로 추정됩니다. 다만 하이브가 SM을 인수한다면 '초대형 1등 기업'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독과점 우려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돈 가진 사람만 이기는 싸움…누군가는 피해 본다
자금력 싸움에 더해 감정싸움까지 돼 가는 모습입니다. 경영권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인지, 상대방의 당위성을 깎아내리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이 싸움의 본질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SM엔터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진 배경에는 SM엔터를 보다 건강하고 성장할 수 있는 회사로 바꾸겠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본질은 희석되고 돈과 단기적인 주가 흐름에만 관심이 몰리고 있죠. 당장 소액주주들도 행복할지 모릅니다. 어찌됐든 하이브의 공개 매수가 진행되는 이달 말까지는 주가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성장과 방향성과 옳고 그름의 당위성은 사라지고 진흙탕 싸움을 불사한 돈의 당위성만 남은 지금의 세태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그럴 여력도, 유인도 사라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날까요? 아마 아무도 쉽사리 예측하지 못할 겁니다. 결국 돈을 가진 사람만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죠.
개인적으로 연예기획사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JYP엔터테인먼트(JYP Ent.(035900))라고 생각합니다. 초기 SM엔터가 이 전 총괄을 경영에서 배제하려고 했던 배경은 결국 경영 선진화였습니다. ‘SM3.0’ 시스템을 전면 도입해 새로운 SM엔터로 거듭나겠다는 복안이었죠. 이런 시스템을 일찌감치 도입한 기획사는 바로 JYP입니다. JYP 역시 SM엔터의 이수만처럼 박진영 프로듀서의 영향력이 강한 회사였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지우는 작업이 JYP 2.0이었습니다. 박 프로듀서는 일선에서 물러나 각각의 레이블이 아티스트를 담당하는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JYP엔터의 지난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1024억 원에 달합니다. 2021년 579억 원보다 76% 넘게 커졌습니다. 2017년 194억 원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은 어느새 1000억 원대까지 불어났습니다. 주가도 꾸준히 우상향에 성공했습니다. 2017년 JYP엔터의 시가총액은 1600억~1700억 원대에 불과했는데요, 지금은 2조 6000억 원을 넘나드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SM엔터의 단기적인 주가 흐름과 투자 수익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성장 방향성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