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美中 갈등 유탄 맞은 'K반도체 중국공장'[윤홍우의 워싱턴24시]

美, 中반도체 규제에 韓도 긴장감

'워싱턴 로비'로 1년 시간 벌었지만

"언제까지 버티겠나" 불안감 커져

韓 외교, 기업들 정교하게 도와야





지난해 말 미국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법의 천문학적 보조금 지급을 앞두고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물론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미국 각 지역들에 생기가 돌고 있다. 인텔이 200억 달러를 투자해 2개의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오하이오 콜럼버스 지역에서는 대규모 터파기 공사와 함께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한 기술 교육이 한창이다. 늙고 퇴보한 중부 내륙의 러스트벨트가 거대한 반도체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에 실리콘 사막(Silicon desert)을, 오하이오에는 실리콘 심장부(Silicon heart)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반도체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것은 미국에 진출한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텍사스주 테일러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미국 상무부와의 협약을 통해 조 원 단위 보조금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 역시 미국에 첨단 패키징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 주변에서는 보조금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싸늘한 긴장감이 감돈다. 미국 보조금을 받게 되면 중국에서의 반도체 투자가 제한되는 ‘가드레일’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중 규제 때문이다. 현지의 한 소식통은 “삼성과 SK가 중국에서의 기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공격적으로 미국에서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공장’이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과정에서도 워싱턴을 찾은 한국 협상단이 1년간의 제재 유예를 받아내기 위해 치열한 협상을 벌여야 했다. 올해 10월이면 다시 유예기간이 끝나는 가운데 이는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는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됐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삼성이 느끼는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면서 “1~2년을 더 버틴다 해도 과연 언제까지 중국에서 미국 제재 유예를 받을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것은 치명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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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의 대중 규제로 인해 난처한 처지에 놓인 것이 우리 기업들뿐만은 아니다. 일본과 네덜란드 역시 최근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에 동참하기로 했다. 도쿄 일렉트론의 중국 매출이 25%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장비 산업과 제조 산업은 본질적으로 성격이 달라 우리 기업들이 겪는 문제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 통상 전문가는 “장비 업체들은 피해는 있겠으나 점차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공장이 건설되면 그곳에 장비를 팔면 된다”면서 “이미 수십조 원을 중국에 투자해 놓은 삼성의 리스크와는 비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결국 ‘탈중국’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글로벌 생산 시설을 중장기적으로 다각화한다고 해도 현시점에서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지금까지 수십조 원의 투자 규모도 문제지만 이미 공급망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애플의 아이폰, HP와 델의 컴퓨터조차 중국 공장에서 삼성 반도체를 공급받아 생산된다”면서 “미국 입장에서도 탈중국은 현 공급망 구조에서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국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기업들의 중국 공장을 안정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절묘한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공장 문제가 지난해 한미 관계를 떠들썩하게 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보다도 수백 배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올해 들어 발생한 무역적자 대부분이 반도체 부진에서 비롯됐을 정도로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장관과 차관이 요란하게 워싱턴을 오가는 보여주기식 외교보다는 한국·미국·중국 사이에서 기업들을 정교하게 백업할 외교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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