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를 풍미한 한국 행위예술 1세대 성능경(79) 작가가 생애 두 번째 상업 개인전을 연다.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1968년 이후 개인전을 단 5회 밖에 열지 않은 작가는 올해만 총 5회의 국내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쏠린다.
성능경 작가는 22일 백아트(BAIK Art)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성능경의 예술 행각’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평생 한 길만 걸어온 것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성 작가는 1973년 전위미술 단체 ST(Space&Time: 조형미술학회)의 회원으로 신문과 사진 등 미디어를 활용한 ‘개념 미술’을 처음 시도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은 ‘신문:1974년 6월 1일 이후’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다. 해당 작품에서 그는 두 달간 매일 신문을 일정한 크기로 오려 붙이는 행위예쑬을 선보였다. 매일 새로 배달되는 신문을 활용하고, 지난 신문은 투명한 아크릴 박스에 버려 분리수거하는 방식이다. 성 작가는 자신의 개념미술에 대해 “음악, 무용 등 다른 예술은 물질성이 없지만 미술만 유독 물질성이 있고 자산으로 평가되고 거래된다”며 “미술에서 물질성을 제거하고 정보로서 미술을 제시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시절 개념미술은 미술계에서 철저하게 비주류였다. 성 작가는 “1970년 대에는 개념미술을 한다고 하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였다"며 "통제 받는 신문에 대한 묵언의 시위·저항을 하고 싶어 매체 퍼포먼스를 발표했지만 상업성이 크게 떨어졌다(non-profit)”며 당시를 회고했다. 실제로 그의 퍼포먼스는 미술계를 발칵 뒤집었지만 공식 작가 생활을 시작한 1968년부터 개인전을 단 5회 밖에 열지 않았을 정도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활동을 해온 게 사실이다. 특히 민주화 열기로 ‘민중 미술’이 주름잡던 1980년대에는 정치적 의미와 거리가 먼 행위예술은 설 자리가 없었고, 작가 스스로 “80년대 중반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커리어의 공백 상태를 맞았다”고 할 정도의 암흑기를 겪었다.
하지만 반 세기 이상 단 한 번도 작업을 멈춘 적은 없다. 총 170여 회의 퍼포먼스를 열었고, 작품 내용도 신문읽기, 돈세기, 돌 던지기(1970년 대)에서 그날의 상황에 맞게 퍼포먼스를 구상하는 ‘모듈러 퍼포먼스(1990년 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진화했다. 김남수 평론가 등 미술계가 성 작가를 ‘저평가 우량주’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적어 저평가 돼 있었지만 올해 여러 전시에서 고유의 메시지를 발산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번 백아트 전시는 지난 1991년 대구 삼덕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S씨의 자손들-망친 사진이 더 아름답다’ 이후 생애 두 번째 상업화랑 개인전이다. 많은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만큼 1970-1980년 대 그의 대표작인 ‘끽연’, ‘수축과 팽창’ 등이 전시된다. 나아가 수년 간 신문에 연재된 영어교육 섹션을 스크랩해 흔적을 남긴 ‘그날그날 영어’ 연작,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애플리케이션(앱) 프로그램으로 컬러링 한 ‘밑 그림’ 연작도 만나볼 수 있다.
백아트 개인전을 시작으로 올해는 그의 작가 인생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 활동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단체전 ‘한국 실험미술 1960-1970’에 참여한다. 8월 말에는 갤러리현대 개인전이 예정돼 있으며, 9월에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와, 리만 머핀 뉴욕 개인전이 열린다. 나아가 2024년 2월 부터는 로스앤젤레스의 해머미술관에서도 전시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