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계 원로들을 만나 정부의 노동 개혁 의지를 알아달라고 재차 호소하고 나섰다. 노동계 원로들은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 노동계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로들은 양극단으로 치닫는 노정 갈등을 풀기 위한 노정 대화를 시급한 과제로 지목했다.
이 장관은 2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문성현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 등 노동계 원로 7명을 만났다. 이 장관은 “노동 개혁의 시작은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면서 “노동 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며 대표적인 정책으로 노동조합 회계 투명화 강화 방향을 설명했다. 이 장관은 노동계가 자주권 침해라며 정부의 노조 회계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한 상황에 대해 “국민 혈세를 지원하고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과 보호를 받는데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동 개혁은 임금과 근로시간 개편을 중심으로 노동법제 현대화, 노사 법치주의 확립 등으로 요약된다.
노동운동가였던 이 장관은 “1987년 노동 체제는 통제에 저항하기 위해 대립적이고 전투적인 관계가 불가피했다”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현 노동운동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한국은 노사간 대립이 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장관은 노동 개혁에 대해 “일각에서 정부가 ‘노조를 탄압한다’고 주장한다”면서 “개혁은 다수의 보통 노동자와 취약 노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동계 원로들은 시급한 것은 노동 개혁의 과제보다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노동계 원로는 “극심한 노정 갈등을 풀기 위해 노정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며 “경사노위 내 두 전문가 기구에 노동계가 빠져 있는 점도 지적됐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노동 개혁 전문가 기구는 5곳이다. 이들 기구 중에 노동계 인사는 1명뿐으로 대부분 학계로 구성됐다. 원로들은 경사노위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경사노위는 노사정 기구로서 노동 개혁과 같은 첨예한 사안에 대한 사회적 대화를 주도해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경사노위가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총은 역대 정부의 노정 파트너였다. 다른 원로는 “상생 임금 체계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작년 하청노조 파업이 일어난 조선업에서 원·하청 상생체계를 주문했다. 한 참석자는 정부의 노동 탄압이 심하다는 쓴소리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사의 불법행위부터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근로자(노조)와 사용자(기업) 모두 제 역할을 다해야 제대로 된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한다는 지적이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윤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노조의 불법행위를 지적하며 “노조도 문제겠지만 우리가 모두 그렇게 적응해서 살아온 건 아닌가”라며 관계 부처에 대책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월례비를 강요하는 불법행위를 일삼은 건설노조의 행태와 관련해 “이제 끝까지 가야 한다. 조금 하다가 마는 게 아니라 임기 말까지 우리나라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적폐를 뿌리 뽑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노조는 노조답고, 사업주는 사업주답게 제대로 된 시장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리가 올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노조가 먼저 제 역할을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노조가 정상화된다면 우리 자본시장도 엄청나게 발전할 것”이라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 반대를 외치거나 채용 장사를 하는 노조가 정상화되면 기업가치도 저절로 올라가고 일자리 또한 엄청나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노조 회계 투명화와 관련해 “노조 집행부가 회비를 어디다 가져 쓰는지 궁금해하는 조합원이 굉장히 많을 것이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은 “(노조 지도부가) 가만히 안 놓아두기 때문에 완전히 왕따를 시키고 고통을 주는 것 아니냐”며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