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사들이 운전자보험 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가입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2020년 3월 시행된 ‘민식이법’ 이후 운전자 처벌이 강화되면서 자동차 사고에 대한 책임 부담이 커진 운전자들의 수요에다 보험사들도 사실상 포화 상태인 자동차보험에서 눈을 돌리며 시장 확대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금융감독원이 운전자보험에 대한 소비자 경보를 발동해 가입자들의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보험 업계 및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운전자보험 신계약 건수는 지난해 7월 39만 6000건에서 11월 60만 3000건으로 50% 급증했다. 운전자보험은 자동차보험과는 달리 의무보험이 아니며 자동차 사고로 인한 상해 또는 형사·행정상 책임 등 비용 손해를 보장하는 보험이다.
스쿨존에서 김민식 군이 숨진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진 ‘민식이법(도로교통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이 시행된 후 운전자 처벌 수위가 높아지면서 운전자보험 수요도 덩달아 늘었다. 15개 손해보험사의 2019년 신계약 건수는 358만여 건, 2020년 552만여 건, 2021년 450만여 건을 기록했는데 2020년 가입자가 급증한 것은 ‘민식이법’이 시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들어서는 DB손해보험이 지난해 10월 운전자보험을 개정·출시하면서 운전자보험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DB손해보험은 ‘한문철TV’를 통해 10년 넘게 교통사고를 분석해온 한문철 변호사와 함께 운전자보험의 변호사선임비용과 교통사고처리지원금 등의 담보 보장을 대폭 강화한 개정 상품을 선보였다. 약식기소나 불기소 단계는 물론 경찰조사(불송치) 단계에서 변호사를 선임한 비용까지 보장이 가능하고 보장 금액 또한 타인 사망 및 중대 법규 위반 사고에 대해 최대 5000만 원까지 보장해 출시 당시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DB손해보험의 해당 특약은 독창성을 인정받아 3개월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했는데 이 기간 동안 월 신규 가입자가 평균 70%가량 늘어났다. DB손해보험의 배타적 사용권이 종료된 후 K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 등이 잇따라 비슷하게 보장을 강화한 운전자보험을 출시했다. 지난해 운전자보험 신계약 건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전년 대비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손보 업계 관계자는 “운전자보험은 월 만 원 정도로 비용 부담이 크지 않은 만큼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들어둔다면 장점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전자보험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23일 금감원은 운전자보험에 대한 소비자경보를 발령한다고 밝혔다. 운전자보험은 부가 가능한 특약이 100개 이상으로 매우 많고 보장 내용도 다양해 소비자가 제대로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금감원은 운전자보험 가입이 자동차보험과 달리 꼭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면서 운전자보험 역시 꼭 가입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해 ‘끼워 팔기’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의 경우 25일 KB손해보험을 시작으로 손해보험사들이 줄줄이 2%대의 보험료 인하에 나설 예정이다. 보험료 인하 수준은 평균 2만 원 미만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최근 경찰 조사 단계까지 보장이 확대된 변호사선임비용특약은 사망 또는 중대 법규 위반 상해 사고 등 매우 제한적인 경우만 보장하므로 소비자는 보험금 지급 조건을 자세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면허·음주·뺑소니로 인한 사고도 운전자보험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상 운전자보험은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한 상해 및 비용 손해 등은 보장되지만 무면허·음주·약물상태 운전, 사고 후 도주(뺑소니) 중 발생한 보험사고는 보장되지 않으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