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 등장 이후 주춤했던 신생혈관(혈관내피성장인자수용체·VEGFR) 저해제 처방과 연구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면역항암제와 병용했을 때 치료 효과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면역항암제 때문에 주춤했던 신생혈관 저해제가 면역항암제 때문에 다시 각광받는 모양새다.
26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VEGFR 저해제 세계 매출 규모는 2012년 30억 달러에서 2022년엔 90억 달러로 확대됐다. 올해는 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VEGFR 저해제는 암에 의해 혈관이 새로 생기는 것을 방해해 암 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막는 기전의 약이다.
신생혈관이란 기존 혈관으로부터 새롭게 생성된 혈관을 말한다. 암 세포는 무분별한 분열 과정에 들어서면 성장에 꼭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신생혈관 촉진인자인 VEGF를 다량 분비한다. 이는 주변 정상 세포가 저산소와 영양결핍 상태에 빠지게 만들고 암에 유리한 미세환경을 조성해 면역세포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VEGFR 저해제는 암의 성장을 차단해 암을 죽이는 표적항암제다. 암 세포만을 표적하기 때문에 다른 정상 세포에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화학항암제와 차별화된다.
면역항암제가 출현하면서 성장세가 다소 주춤해졌던 VEGFR 저해제가 최근 다시 각광받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면역항암제 때문이다.
면역항암제는 인체의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을 치료하는데, 암 세포 주위에 둘러쳐진 종양미세환경(TME)을 뚫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반응률이 낮은 게 단점이다. 통산 반응률이 20~30% 수준이다.
VEGFR 저해제는 신생혈관의 생성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기존에 형성된 불안정한 미세혈관들을 정리해 면역세포가 암세포에 효과적으로 침투하도록 도와 이런 면역항암제의 반응률을 높여준다. VEGFR 저해제와 면역함암제를 같이 쓰면 면역항암제의 반응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때문에 최근 항암제 개발 분야에서도 면역항암제와 표적항암제를 병용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VEGFR 저해 기전의 대표적인 약은 일본 제약사 에자이의 ‘렌비마(렌바티닙)’, 미 제약사 엑셀리시스의 ‘카보메틱스(카보잔티닙), 화이자의 ’인리타(악시티닙)'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렌비마는 간암, 신장암, 신세포암 등 다양한 적응증에서 처방이 증가하며 2022년 2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렌비마는 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여러 적응증에 대한 병용임상을 확대해가고 있기도 하다.
한국 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해당 기전의 약물로는 HLB(028300)의 ‘리보세라닙’이 대표적이다. HLB는 지난해 유럽암학회(ESMO)에서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을 병용한 글로벌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한 이후 현재 미 식품의약국(FDA)에 신약허가신청(NDA)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는 위암 3차, 간암 1차 치료제로 허가 받아 지난해 5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
HLB는 올해 간암 1차 치료제 미국 NDA를 비롯해 위암에 대해서도 NDA를 준비하고 있다. 선낭암에 대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NDA를 제출했다. HLB 간계자는 “간암 1차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을 경우, 캄렐리주맙 외 다른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치료도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거 밀헸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면역관문 억제제와 항신생혈관생성 억제제 간의 병용요법이 항암제 임상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해당 약물을 보유한 다국적 제약사간 파트너쉽이 활발해지고 있다”며 “특히 VEGFR 저해제는 저분자화합물로 경구용 항암제 개발이 용이해 환자의 복용편의성을 개선해주는 효과도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