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를 믿어주세요. 여러분이 더 이상 힘들어하고 파국으로 가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우리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을 들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요구사항도) 보장 못하고 이 상황을 (정부가) 만들지 않았습니까.”(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작년 7월 19일 이 장관이 1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철제구조물에 들어가 임금 등 제대로 된 근로 여건을 위해 파업을 했던 유 부지회장을 만나 나눈 대화다. 이 장관은 유 부지회장에게 "건강을 생각해 (파업을) 빨리 풀어 달라, 구조적인 문제(하청구조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이 '약속'이 7개월 만에 지켜지게 됐다. 원·하청 임금격차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노동개혁 목표가 조선업에서 첫 발을 뗀 것이다.
고용부는 27일 오전 울산 현대중공업 영빈관에서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협약은 작년 대우조선해양 하청 파업 이후 불거진 조선업 원·하청 상생 방안의 핵심이다. 정부는 작년 10월 조선업 격차해소와 구조 개선 대책 일환으로 이달까지 상생 협약을 맺겠다고 공언했다.
27개 실천과제로 구성된 협약에는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조선업 원·하청업체 10곳과 정부가 참여했다. 이번 협약은 과거 중앙 정부가 협약 밑그림을 주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민간 전문가가 주축이 돼 대안을 제안하고 원·하청이 실행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방식을 택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조선업은 원·하청 간 상회 신뢰가 높아야 한다”며 “실천 가능한 과제만 합의하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 모델이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협약의 핵심은 원청이 적정한 기성급을 지급하고 하청이 임금인상률을 높여 원·하청간 보상 수준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작년 대우조선 하청 파업은 원청에서 하청으로 제대로 된 보상(기성금 등)이 이뤄지지 않은 게 발단이 됐다. 그동안 조선업은 저임금, 고위험 일자리로 고착화돼 인력난까지 겪으면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이번 협약은 조선업 원·하청 임금 구조를 바꿔 궁극적으로 인력난을 해소하는게 목표다. 협약에는 제대로 된 임금 보상을 위한 숙련도에 맞춘 임금체계를 확산하는 안도 담겼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여러 업종에서 능력과 상관없이 연공에 따라 오르는 임금체계로 인해 원하청 임금 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임금체불 예방제도, 재하도급 사용 최소화 등 조선업 원·하청 임금 질서를 해치는 관행 개선도 협약안에 담겼다. 고용부는 상생 협약이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 연체금 면제체납처분 유예 등 다양한 혜택을 약속했다.
조선업의 상생 협약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의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고용부는 이번 협약 모델과 이행 과정을 다른 업종에도 적용할 계획이다. 노동 개혁은 조선업 상생 협약처럼 임금을 중심으로 한 근로 격차를 최소화하는 게 목표다. 이 목표를 정부가 강제하지 않고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달성하도록 돕는 게 개혁의 핵심 동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 상생협약처럼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이상균 현대중공업 대표는 협약식에서 “조선업의 위치는 협력업체와 함꼐 노력한 결과”라며 “상생 협약을 적극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무덕 현대중공업사내협력사협의회 회장도 “소속 근로자의 임금과 복지가 개선돼 조선업이 매력적인 일자리로 자리잡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고용부는 4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조선업 상생 협약으로 자신감이 붙은 고용부는 노동뿐만 아니라 공정거래, 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대책을 구상 중이다. 이 장관은 “약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동 개혁의 첫번째 퍼즐이 완성됐다”며 “조선업 상생모델은 상생과 연대를 통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