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늙은 코미디언





늙은 코미디언



문정희

코미디를 보다가 와락 운 적이 있다

늙은 코미디언이 맨 땅에 드러누워

풍뎅이처럼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린 어린 날이 있었다

사람들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코미디를 보고 운다고



그때 나는 세상에 큰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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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눈물 사이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어두운 맨 땅을 보았다

그것이 고독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그런 미흡한 말로 표현되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맨 땅에다 시 같은 것을 쓰기 시작했다

늙은 코미디언처럼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맨 땅은 아이들이 환호하며 달려갈 때 한 걸음도 못 따라간다. 맨 땅은 사람들이 발구를 때 외마디 비명도 내뱉지 않는다. 맨 땅은 단단한 발굽들이 달려갈 때 움푹움푹 살점이 패여 나간다. 맨 땅은 농부의 쟁기가 지나갈 때 속절없이 뒤집힌다. 맨 땅은 겨자씨가 꼼지락거려도 살갗이 튼다. 맨 땅에서 태어난 이들이 맨 땅에 헤딩하다가 맨 땅에 묻힐 때에도 맨 땅은 그저 맨 땅인 척한다. 맨 땅 위 웃음은 하늘로 흩어지고, 눈물은 모두 땅속에 스민다. 맨 땅의 말은 미흡한데 지상의 모든 언어가 그 위에서 피고 진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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