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적자 사슬을 끊기가 너무 어렵다. 2월에도 -53억 달러를 기록해 어느덧 12개월째다. 전 세계적인 고강도 긴축, 반도체 시황 악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 등 악재는 산적해 있는데 진행 양상은 더 안 좋다. 미국에서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얘기가 쏙 들어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수입물가는 더 오르고 있고 주력인 우리 반도체 기업의 실적은 예상보다 더 나쁘다. 에너지 가격을 좌우하는 전쟁도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그나마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이 희망이지만 우리 교역 요건을 제약하는 변수들이 워낙 꼬여 있어 무역수지에서 반전의 모멘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1일 발표된 ‘2월 수출입동향’을 보면 중국과 반도체가 문제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역대 최악이었던 전달보다는 적자 폭이 70억 달러가량 줄었지만 중국 수출은 1년 전과 비교하면 9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2월 대중(對中) 수출은 98억 8100만 달러로 24.2% 줄었다. 이는 중국의 경제활동이 아직 본격적으로 재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성장 양상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최근 한국은행도 중국이 중간재 등 투자재 중심이 아니라 소비재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한국 경제에 보탬이 되는 부분이 줄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특히 지난달 대중 수입액은 110억 달러로 지난해 2월보다 5.9% 증가해 대중 무역적자가 굳어지는 양상이다. 대중 수출 부진은 우리나라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도 악영향을 줬다. 중국이 우리나라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2월보다 42.5% 급감한 59억 6300만 달러로 집계됐다. 대중국 칩 수출액은 39% 줄었다.
반도체 수출 급락은 정보기술(IT) 제품 등 세트 수요가 위축된 데다 K반도체의 주력인 메모리 제품 가격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부진 등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월 메모리 사업에서 상당한 액수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수출은 1월에도 44.5% 감소한 데 이어 월간 기준으로 7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일본·중남미 등 다른 주요 국가로의 수출 역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감소했다. 지난달 아세안으로의 수출액은 16.1% 감소한 84억 6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일본(-4.9%), 중남미(-19.1%)도 줄었다.
경기 둔화로 수출은 부진한데 수입은 1년 전보다 3.6% 증가했다.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 수입액이 전년보다 19.7%나 늘어난 영향이 컸다.
친환경차 수출에 힘입어 미국(16.2%)과 유럽연합(13.2%) 수출이 활황을 보인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특히 지난달 자동차 수출액은 1년 전보다 47.1% 증가한 56억 달러로 월간 역대 수출 1위 기록을 작성했다. 같은 기간 2차전지 수출액은 25.1% 불어나 2월 기준으로 가장 많은 수출액을 기록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무역수지는 중국 경기 회복과 함께 단기적으로 회복될 수 있겠지만 그 효과는 제한될 것”이라며 “미국이 기존 예상보다 금리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데다 중간재를 자국산으로 대체하려는 중국의 움직임도 강해질 것으로 전망돼 당분간 분위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미중 갈등이 관리되기보다는 앞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정부는 무역적자 행진이 지속되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수출을 살릴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범부처 수출상황점검회의를 매달 개최해 올해 수출 목표로 제시한 6850억 달러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