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을 보다 보면 의외의 인물이 등장한다. 무려 100명이 참가하다 보니 모두의 얼굴이 비치지 못하지만, 그중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하는 인물이 있다.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빨간 머리’ 참가자가 그렇다. 그가 달달한 사랑 노래 ‘안아줘’의 주인공, 래퍼 오반이라는 걸 알면 더 호기심이 생긴다. 오반은 왜 ‘피지컬: 100’에 도전했을까.
알고 보면 오반은 운동 마니아다. 지난해 6월에는 국내 유튜브 최초 격투 서바이벌 프로그램 ‘블랙컴뱃2’에도 참여했다. 시합 두 달 전부터는 선수부에서 프로처럼 운동했다. ‘피지컬: 100’ 출연은 격투기 시합을 준비하면서 이뤄졌다.
“소속사 대표님이 어떻게 접점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넷플릭스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데 어떠냐’고 하시더라고요. 저야 영광스럽고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죠. 100명의 운동 잘하는 사람이 모여서 ‘오징어 게임’ 같은 서바이벌을 한다니.”
오반은 두 번째 미션 ‘모래 나르기’에서 탈락했다. 내로라하는 100명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괄목할 만한 성과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부상 때문에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서다. 첫 번째 미션 ‘공뺏기’에서 승기를 잡고 다음 미션까지 2~3주간의 휴지기가 있었고, 그 사이 오반은 ‘블랙컴뱃2’ 시합에 나가 오른손 손등 골절을 입고 수술까지 했다.
“‘모래 나르기’를 할 때 손을 제대로 못 썼어요. 제가 나무판자를 올리다가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부상 때문이에요. 주목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 아쉽게 됐죠. 부상에 대한 부분은 차현승 형은 갈비뼈가 금이 가있고, 성치현 선수는 십자인대가 나가 있는 상태여서 제가 할 말은 없어요.”(웃음)
두고두고 아쉬운 건 사실이다. 처음 참가했을 때는 ‘괴물들이 나올 텐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나’라는 마음이었다. ‘공뺏기’ 미션에서 아이스하키 이주형 선수와 겨뤄 이긴 뒤로는 욕심이 생겼다. 미션을 거듭할 때마다 현실감 넘치는 세트장에 몰입하며 전투력이 상승했다.
“탈락했을 때는 눈물이 날 뻔했어요. 이후에 참가자들끼리 만나서 다음 미션이 뭐였다는 얘기를 들으면 궁금하기도 했고요. 방송 보면서도 너무 아쉬웠어요.”
‘공뺏기’ 미션에서 활약은 통편집됐다. 미션은 이주형 선수가 오반을 지목하며 시작됐다. 오반은 자신보다 16kg나 더 나가는 이주형 선수를 상대하기 위해 기싸움부터 했다. 그는 “입장하기 전에는 서로 다치지만 않게 잘하자고 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몰입이 되더라”며 “스파링하듯이 장은실 레슬링 선수와 MMA(종합격투기) 선수들이 있는 근처에서 미션을 했다. 내가 먼저 공을 구석에 넣었고 이주형 선수가 뺏으러 왔을 때 제압했다”고 설명했다.
“분량이 적은 건 이해가 됐어요. 제가 시청자 입장이라도 오반이 얼마나 센지 보다는 윤성빈 선수나 추성훈 선수가 얼마나 잘할지가 궁금했을 거 같거든요.”
적은 분량에도 오반은 의외의 존재감을 뽐냈다. 빨간색으로 염색한 청년이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화면에 자주 잡힌 것. 이는 오반이 의도한 설정이었다.
“캐릭터를 그렇게 잡고 갔어요. 이전에 뮤직비디오에서 머리를 밀었더니 깡패 같아 보여서 색깔이 필요하겠다 싶었거든요. ‘슬램덩크’ 강백호 느낌으로 하고 싶어서 빨간색으로 염색했어요. 제가 볼 땐 이미지가 괜찮더라고요. 몸 쓰는 걸 많이 하니까 센 이미지를 가져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유지하고 있어요. 추임새를 많이 한 건 크로스핏이나 격투기를 하다 보니 몸에 밴 거예요.”
“인기 실감은 못해요. 빨간 머리라서 알아보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활약하지 못했잖아요. 최근에 ‘피지컬: 100’에 출연한 남경진, 조진영 형님과 친해져서 같이 다니다 보면 알아보는 분들이 있는데 전 옆에 서 있어요.”(웃음)
최근의 삶이 운동으로 가득 찼지만 오반의 본업은 래퍼다. 운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하루를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다.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갖게 됐지만 음악 작업은 더 어려워졌다. 디테일하게 감정을 들여다봐야 음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과정이다.
“그동안은 저를 위로하기 위한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그러려면 가사나 메시지가 디테일해야 했고 그러면서 사랑을 받았어요. 지금은 어떻게 컨트롤해야 할지 찾고 있어요. 제가 아직 프로페셔널 하지 못 해서 그런 거겠죠.”
오반의 음악 세계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연애도 6~7개월 전에 끝났다. 비연예인 여자친구와 당당한 공개 연애로 주목받았던 그는 여자친구를 위한 곡을 쓰고 뮤직비디오에도 함께 출연한 바 있다. 결혼 준비를 할 만큼 확신이 있는 관계라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음악적 방향이 달라질 건 없어요. 전 항상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거든요. 여전히 사랑에 대한, 관계에 대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모두가 하는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게 숙제예요.”
“이별은 여러 상황 때문이었어요. 이제서야 이야기하는 건 적절한 시기를 찾았던 거고요. 이때쯤은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공개 연애가 틀렸다고 하고 싶진 않아요.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일 뿐이죠. 다시 공개 연애를 할지는 모르겠어요. 많은 고민이 필요헤요. 전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 때가 되면 공개하지 않을까요.”
오반의 이름 앞에 운동이나 공개 연애가 먼저 따라붙는 건 양날의 검이다. 예능 출연도 그렇다. ‘피지컬: 100’ 외 다른 운동 프로그램에서도 섭외를 받으면서 그런 고민을 거쳤다. 인지도를 높이며 도움을 받는 부분도 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뮤지션 오반의 이미지에 반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로운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결국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오반이 있다는 생각이에요. 소비하길 원하는 오반의 모습이요. 제가 이때까지 모른 척해왔어요. 괴로움에 빠져들기 싫어서요.”
그럼에도 ‘피지컬: 100’에 대한 애정은 한 움큼 남겨놨다. 그는 “시즌2는 할 것”이라며 “다른 운동 프로들을 보면 오락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피지컬: 100’은 진지하고 스트러글링(struggling)에 초점 돼 있다. 이 인물의 스토리를 몰라도 경기만 보고 노력이 느껴진다”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올해 목표는 아티스트 오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삶의 균형을 찾아가며 앨범을 작업하는 중이다. 어떤 형태로 앨범이 발매될지는 더 고민해 봐야겠지만, 하루빨리 팬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확실하다.
“콘텐츠 속 오반이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 노래하는 오반을 보여주고 싶어요. 연기도 해보고 싶고요. 아는 건 없는데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군대도 내년쯤 가야 하니까 우선 음악을 내고 싶어요. 마음 같아서는 두 달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꼴로 내고 싶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