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주식시장에 우회 상장하는 회사가 최근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합병을 주관하는 증권사가 기업 가치를 실제보다 부풀려 상장을 추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일반 투자자가 이를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이 9일 공개한 최근 스팩을 통한 기업공개(IPO)·합병 동향 자료에 따르면 스팩을 통한 증시 상장 건수는 지난해 45건으로 2021년 25건보다 80% 늘었다. 2020년에는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9건에 불과했다.
스팩은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다. 상장해 모은 자금으로 비상장회사를 인수하거나 서로 합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상장 후 3년간 M&A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투자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청산 절차를 밟는다.
기업 입장에서 스팩은 까다로운 정식 IPO 절차를 피해 상대적으로 빠르고 쉽게 증시에 입성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다. 여기에 최근 IPO 시장이 부진 상태에 있다는 점도 스팩을 통한 상장 수가 급증하는 데 영향을 줬다. 미국에서도 스팩을 통한 상장은 최근 몇 년 간 스타트업에 큰 각광을 받았다.
금감원은 다만 스팩 투자 때 손실 가능성도 크다는 점을 일반 투자자들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팩의 대표발기인인 증권사가 M&A 성사를 위해 합병 비율을 스팩 투자자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평가할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스팩 투자, 비상장법인과의 합병이 반드시 높은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금감원이 2019∼2022년 9월 합병이 완료된 스팩 54개사를 분석한 결과 스팩의 합병가액은 기준시가보다 할인하고 합병 대상 법인의 가액은 본질가치보다 할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증권사가 일반 투자자의 이익에 반하는 합병을 추진한 셈이다. 기관투자자의 경우도 대부분 합병 완료 후 피합병 회사의 주식을 받는 대신 스팩 주식을 미리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을 따르기에 의결권 행사 등으로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감원은 이에 스팩 상장·합병 관련 증권신고서에 투자주체 간 이해상충 요소가 충실히 기재될 수 있도록 심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는 스팩 주식을 취득한 가액이 낮기 때문에 비상장법인에 대한 엄정한 평가보다 합병 성공을 우선할 우려가 있다”며 “투자자들은 유의하며 투자에 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