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프로그램은 스포츠 경기가 아닌 예능 콘텐츠이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 결승전 조작 논란에 대한 제작진의 해명 중 한 대목이다. 맞는 말이기도 틀린 말이기도 하다. 제작진의 말처럼 예능은 경기의 올타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스포츠 중계와는 다르다. 그렇지만 스포츠라는 장르적 특성을 가져온 예능이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피지컬: 100’ 제작진의 긴급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제작진은 이례적으로 원본 영상을 공개하며 그간의 의혹을 씻어냈다. 우승자인 우진용 선수가 손을 들어 경기가 중단된 것이 아니고,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개입해 승패가 갈린 것도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의문점이 남는다. ‘제작진은 왜 결승전이 재경기 끝에 이뤄진 것인지 밝히지 않았냐’는 것이다. 의혹을 제기했던 정해민 선수가 바라는 것도 그 부분이었다. 결과의 번복이 아닌 경기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스포츠의 특성상 결과는 물론 과정도 중요하다. 우리가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작진은 이 지점에서 스포츠 경기와 예능에 차이를 뒀다. 두 선수가 10분 이상 힘을 뺀 첫 번째 경기에서 발생한 돌발적인 소음 때문에 도저히 방송에 쓸 수 없었다는 것이 초점이다. 현장에서 두 선수와 협의를 했다는 것도 강조했다. 출연자에게는 편집 권한이 없다는 것도 덧붙였다.
스포츠 예능에서 스포츠 정신을 뺀 예능만 부각하는 건 위험하다. 시청자는 경기에 참여한 출연자들의 드라마에 열광한다. 정해진 규칙에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주어진 결과에 승복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감동한다.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 큰 호응을 얻다가 편집 조작 논란으로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었던 것이 일례다.
‘피지컬: 100’이 신선한 콘텐츠로 주목받았던 건 한 발짝 더 나아간 리얼리티였기 때문이다. 최강 피지컬을 가린다는 주제로 날것의 모습에 집중했다. 100명의 출연자 중 대다수가 전현직 선수인 것도 스포츠 정신에 준한 콘셉트의 비중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제작진은 오판을 인정했다. 방송 후 의혹을 예상하지 못했냐는 질문에 “간과했던 지점”이라고 답했다. 방송은 지난해 8월 편집이 마무리됐고, 실제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까지 6개월 이상의 간극이 있었다. 제작진은 편집 당시에는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재경기 전후 사정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수정했을 거라고 후회했다.
무조건적인 사과가 해결책은 아니다. 제작진은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며 정해민 선수와의 대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기대만큼 실망했던 이유는 기계적 결함이나 돌발 상황이 아닌 공정성 문제다. 제작진이 언론에 원본을 공개한 뒤로도 일부 시청자들의 원성이 쉬이 잦아들지 않는 건 논란의 핵심을 보는 동상이몽 때문이다. 제작진은 의견을 수렴해 시청자들에게 원본 혹은 감독판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