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중앙 공공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이 고질적인 의사 구인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년 연장' 카드를 꺼냈다. 의사 구인난이 심화되며 진료 차질과 환자 피해로 이어지자 자구책 마련에 나선 셈인데 연봉을 비롯해 각종 처우가 민간병원 보다 열악해 젊은 의사를 끌어오기에는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달 28일 열린 이사회에서 '근무 의사들의 정년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연장한다'는 내용의 인사규정 일부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공공병원은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재난 상황 등 보건의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전선에서 국민 건강을 지키는 기관이다.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과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의 의료 제공도 담당한다. 민간병원에 비해 수익성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급여, 복지 혜택 등 각종 처우가 민간병원 수준에 미치지 못해 의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특히 민간병원은 물론 국립대병원 대부분의 의사 정년이 만 65세인 데 반해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은 공무원 기준인 만 60세로 묶여있는 데 대해 개선 요구가 높았다. 떠나는 인원 만큼 제때 충원이 되지 않으면 의사 수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2016년 국내 전체 의사(9만 7713명) 중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 비중은 11.2%(1만 961명)였지만 2021년 10.7%(10만 9937명 중 1만 1793명)로 하락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역시 지난해 8월 말 기준 결원율이 19%로 2021년(15.9%)보다 3.1%포인트나 늘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기재부의 예산축소 결정으로 신축이전 사업 관련 규모가 대폭 축소하면서 전문의 이탈 현상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정년 연장의 물꼬를 트면서 전국 230여 개에 달하는 공공 의료기관들로 확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월 기준 지방의료원 35곳 중 24곳(69%)이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성남의료원의 전문의 결원율은 무려 34.3%에 달했다. 공주의료원(30.6%), 군산의료원(30.4%), 남원의료원(29.7%) 등도 결원율이 30% 내외 수준이었다.
반면 정년 연장만으로 공공병원들의 의사 구인난을 해소하기는 역부족이란 회의론도 짙다. 정년 연장만으로 연봉 등 처우와 근무조건이 월등히 좋은 대형 민간병원으로 가려는 인력을 유인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시의료원장)은 “지방의료원의 경우 정년을 훌쩍 넘긴 70~80대 의사를 촉탁의(계약의사) 형태로 고용해 진료공백을 메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며 "연봉 4억 원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어 골머리를 앓았던 속초의료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년연장이나 보수를 올려주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공공병원 인력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현재 시범사업 중인 '공공임상교수제도'가 거론된다. 공공임상교수는 국립대병원 소속 정규의사로서 소속병원, 지방의료원 등 지역 공공의료기관을 전담해 필수의료와 수련교육 등을 담당하는 의사인력이다.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10개 국립대병원에서 150여 명 규모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참여율은 저조하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이라는 한시성이 제도 활성화를 가로 막는 요인이라고 보고 국립대학병원 설치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신현영 의원은 지난 8일 '국립대병원 설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힘을 보탰다. 국립대병원이 지역 공공보건의료기관에서 필수의료와 수련교육 등을 담당하는 공공임상교수요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