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일화를 담은 회고록을 발간한다. 노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가 모두 사실이었으며 당시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무능이 비극을 낳았다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예상된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조갑제닷컴·532쪽)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17일 발간한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이끌었던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30일 소환 조사 후 5월23일 서거하자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이날 조갑제닷컴이 배포한 책 소개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이 책에서 권양숙 여사가 고 박연차 회장에게 피아제 남녀 시계 세트 2개(시가 2억550만원)를 받은 사실은 다툼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임 중이던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에게 뇌물로 전달됐음이 상당하다고도 했다.
또한 2007년 6월29일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과 공모해 청와대에서 정상문 당시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100만달러, 그해 9월22일 추가로 40만달러를 받은 사실도 인정된다고 했다. 아들 노건호 씨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이라는 주장이다. 2008년 2월22일에는 건호 씨와 조카사위 연철호 씨가 박 회장에게 500만달러를 받았고 사업명목으로 사용한 것 역시 '다툼이 없다'고 적었다.
정 전 비서관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 횡령에 대해서는 노 전 대통령이 공모한 범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당시 검찰이 이런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을 기소해 유죄를 받아낼 충분한 물적 증거를 확보했지만 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리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자신을 검사장으로 승진시킨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심정"이라고 했지만, 이를 알고도 수사하지 않는다면 검사로서 직무유기라고 판단해 수사를 계속했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이 중수부에 출석한 2009년 4월30일 조사실에서 오고 간 대화도 상세히 기술했다. 당시 우병우 대검 중수1과장이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대질조사를 요구했으나 노 전 대통령 측이 거부하자 두 사람을 대면만 하도록 했다. 이 전 부장에 따르면 박 회장은 당시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 고생이 많습니다.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 가면 통방합시다"라고 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도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구체적인 수사 개입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당시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은 4월10일께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피아제 명품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어떠냐"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4월14일에는 국가정보원에서도 찾아와 비슷한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에 이 전 부장은 "수사에 간섭하지 말라"고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원인의 상당 부분이 변호인으로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이 저서 '운명'에서 '검찰이 박 회장의 진술 말고는 아무 증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쓴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검찰 수사 기록을 보지도 못했고, 검찰을 접촉해 수사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며 의견서 한 장 낸 적이 없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변호인으로서 문 전 대통령이 검찰을 찾아와 솔직한 검찰의 입장을 묻고 증거관계에 대한 대화를 통해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는 변호를 맡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