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바이오 산업 혁신 전략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바이오 업계 관계자들까지 청와대 영빈관에 불러 모아 의견을 들었다. 바이오 산업 활성화를 위해 보건복지부·과학기술부·산업통상자원부 등에 흩어져 있던 기능을 합친 범 부처 컨트롤 타워를 세우고 규제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로드맵을 내놓았다. 강원 강릉과 경북 영암에 바이오 산업단지까지 조성한다고 한다.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바이오 업계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너무 말만 번지르하다” “실속이 없다”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로 요약된다. “정작 가려운 곳은 다른 곳인데 엉뚱한 데만 긁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윤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발표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우주항공·로봇 등 11개 분야와 함께 바이오를 선정했다. 바이오 산업을 단순히 미래 먹거리로서만이 아니라 과학기술 패권을 좌우할 핵심 축으로 봤다. 올해 들어 잇따라 발표한 바이오 산업 혁신 전략도 이 같은 방안의 일환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육성 의지와 지시만으로 바이오 산업을 키울 수 없다. 청와대 영빈관에 다녀온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바이오산업에 대한 육성 의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의지만 갖고 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주변에는 바이오 산업을 제대로 알고 조언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정부 정책이 바이오 업계의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국내 바이오 산업의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한국은 아직 바이오 분야에서 ‘우물 안 개구리’다. 우선 제약 바이오 선진국인 미국·유럽과 비교할 때 시장 규모 차이가 크다. 한국 제약 바이오 업체들의 전체 매출을 다 합쳐도 미국 빅파마 한 업체의 매출에도 미치지 못한다. 작년 기준 세계 1위 바이오기업인 화이자의 매출은 약 1003억 달러(한화 약 123조)로 국내 최대 바이오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매출액 약 3조원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더구나 최근 바이오 업계는 극심한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글로벌 긴축 기조로 유동성이 크게 위축되면서 투자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신생 바이오 기업들이 적지 않다. 기업공개(IPO)시장도 꽁꽁 얼어 붙었다. 신규 투자는 언감생심이고 최근 몇년 간 시장에서 수혈한 자금도 떨어져 간다고 아우성이다.
바이오 산업은 대표적인 R&D 집약 산업이다. 오랜 기간 R&D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산업이다. 수백 억 원대 R&D 비용을 한 두 해도 아닌 수년, 심지어 십수년간 투입해야 한다. 그런데도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만큼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신약 기술을 개발하고도 상용화하기까지 끊임없는 임상시험을 반복하는 이유다. 오랜 시행착오에서 축적된 임상 경험은 신약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 지원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 대책도 바이오 업체들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는데 맞춰져야 한다. 투자세액공제 등 세제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규제 개혁도 필수다. 업계를 답답하게 만드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행정편의주의도 걷어내야 한다.
바이오 시장의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가려운 곳부터 긁어주고 새 살을 돋게 하자. 지원은 적재적소, 필요한 곳에 발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효과도 높아진다. 국내 바이오 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실패해도 격려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을 갖자. 바이오 산업은 꿈을 먹고 자란다. 파격적인 지원과 함께 숙성할 충분한 시간을 주자. 걷지도 못하는데 뛰는 걸 주문해서는 안된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