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만파식적] 무어를 넘어서






반도체 황제 고든 무어가 94세를 일기로 최근 별세했다. 무어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쇼클리반도체연구소’에서 반도체 개발에 발을 들였다. 쇼클리반도체연구소는 진공관을 대체하는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윌리엄 쇼클리가 세운 회사다. 무어는 이후 쇼클리의 독선적인 경영에 반대해 동료 7명과 함께 독립한다. 이것이 유명한 ‘8인의 배신자’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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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캘리포니아 세너제이에 ‘페어차일드반도체’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이곳에서 게르마늄 대신 실리콘을 사용한 트랜지스터를 상용화했다. 창업의 요람인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했다. ‘반도체 회로의 집적도는 2년마다 2배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도 이즈음 나왔다. 무어는 1968년 동료들과 함께 인텔을 창업한 뒤 세계 최초의 상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출시해 컴퓨터 혁명을 이끌었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기업들에 가이드라인처럼 인식됐으며 지난 50여년 간 트랜지스터의 집적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최근 집적기술이 5나노·3나노까지 미세화되면서 반도체칩 하나에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담길 정도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모바일 혁명도 무어의 법칙에 빚을 진 셈이다.

오늘날에는 반도체 미세공정이 물리적 한계에 봉착하자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는 ‘비욘드(Beyond) 무어’ 기술 찾기가 한창이다. 여러 반도체를 수평·수직으로 연결하는 첨단 패키지 기술, 실리콘카바이드·그래핀 등 실리콘을 대체할 신소재 개발, 기존 칩보다 1000배 빠르고 전력 소모는 수만 분의 일에 불과한 광자칩 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양자컴퓨터 등의 등장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는 우리의 핵심 전략산업일 뿐 아니라 ‘실리콘실드’라는 말에서 보듯 안보 자산이기도 하다. 국내 반도체 공급망을 한층 공고히 하는 한편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 경쟁에서도 뒤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인텔을 창업하고 실리콘밸리의 초석을 닦은 무어의 도전 정신으로 무장해야 무어의 법칙을 넘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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