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박철범 칼럼]금리 인상 경고를 무시한 대가

박철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고객들의 대량 인출 사태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미 시그니처은행 역시 인출을 견디지 못하고 폐쇄조치됐다. 스위스 1위 투자은행인 크레티드스위스는 재무 건전성을 의심받다 UBS에 인수됐다. 이 불똥은 독일로 옮겨가 도이체방크 주가를 끌어내렸다. SVB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 불안 심리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SVB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파산의 여파는 어디까지 미칠 지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SVB는 1983년 10월 설립돼 약 40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 중견 은행이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다수의 IT 기업들이 소재한 실리콘밸리에 거점을 둔 은행이다. SVB의 주된 고객도 벤처투자가와 IT 기술에 바탕을 둔 신생기업들이었다. 코로나19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시기에 SVB는 고객들의 예금을 바탕으로 미국의 안전한 장기 국채와 정부가 보증한 모기지 채권을 사들였다. 시그니처은행이 위험하다고 인식되는 가상화폐와 관련돼 곤경에 빠진 것과 달리 SVB는 안전자산으로 간주된 미국의 국채에 투자했는데 왜 문제가 생겼을까. 미국은 팬데믹 기간 넘쳐나던 유동성 때문에 지난해부터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중앙은행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자율을 유례없는 속도로 올리고 있다. SVB는 미 중앙은행의 이자율 인상 경고를 무시했다. 이자율이 곧 하락할 것이라고 믿고 미국 장기 국채에 투자한 것이 화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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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은 보유자에게 미래 특정 시점에 돈을 갚겠다고 약속한 증표다. 따라서 이자율이 상승하면 보유자가 미래에 받을 돈의 현재가치는 하락한다. 이때 채권가격의 하락 폭은 채권마다 다른데, 일반적으로 만기가 길수록 채권가격의 반응은 커진다. 즉 이자율이 상승함에 따라 장기 국채의 가격이 단기 국채보다 더 많이 하락한다. 국채와 같이 신용위험이 낮은 채권도 이자율 변동에 따른 가격 변화의 위험이 존재하는데 이를 채권의 이자율 위험이라고 한다. 채권가격과 이자율의 이런 관계 때문에 SVB는 고객들의 인출을 감당하기 위해 자기들이 구매할 때 지급했던 가격보다 훨씬 더 싼 가격에 국채를 팔아야만 했다. 즉 잘못된 예상에 바탕을 둔 투자로 손실을 입었다.

중견 은행인 SVB는 어쩌면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조금 더 버틸 수도 있었다. 하지만 SVB 경영진은 늘어나는 손실 때문에 초조해졌는지 자금조달 계획을 성급하게 발표했다. 그런데 자금조달 계획의 발표가 SVB 고객과 투자자들이 SVB 재무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만들었다. SVB 고객들은 SVB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미국 장기 국채)의 가치가 하락해 SVB가 손실을 보기 시작하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고, 이는 결국 대량 인출사태로 이어졌다. 이미 곤란해진 SVB는 밀려드는 인출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SVB 경영진은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하라는 경제이론과 반대되는 결정을 했다. 또 은행·연금·보험사와 같은 금융기관들은 채권 투자 때 발생하는 이자율 위험을 관리하고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이자율 변화에 따른 채권 가격의 민감도)을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경제학의 원리를 무시했다.

금융기관 간 거래는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현재 SVB 충격이 한국에 미치는 파장을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연금이 SVB 주식에 투자했다고 하는데 미 정부가 SVB 주주가 아닌 예금자들만 보호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국민연금이 투자 원금을 완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작은 위안은 미 중앙은행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베이비스텝을 밟으며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한 점이다. 한국은행은 금리인상 압박을 덜 느낄 것이다. 그렇더라도 SVB 파산으로 촉발된 충격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당국은 한국 경제와 금융 시스템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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