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반도체·전기차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대만이 “이중과세 방지 협정을 맺지 않으면 미국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조세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1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기업인 TSMC의 미국 투자를 앞두고 세금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29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첨단 반도체 업체의 미국 유치를 추진하는 가운데 대만은 바이든에게 ‘그러려면 조세협정을 체결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은 중국을 지나치게 자극할 것을 우려해 공식적으로는 대만을 주권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대만과 이중과세 방지 협정도 맺지 않고 있다. 이에 대만 기업들이 미국에서 내는 실효세율은 51%로 각각 40.5%인 한국과 호주, 37%인 중국에 비해 크게 높다. 이중과세 방지 협정은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얻은 소득에 대해 본국이나 외국 중 한 국가에만 세금을 내도록 국가 간 맺는 협정이다.
대만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구를 해왔다. 올해에는 워싱턴에 있는 대만 외교관들이 미 관료들과 의회 보좌관들에게 이중과세의 문제점을 담은 문서를 돌리고 있다. 대만 측은 “조세협정이 체결되지 않으면 대만 회사에 대한 조세 부담 우려에 투자자들이 투자를 연기할 것이고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산업 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도 지난달 “TSMC 수뇌부를 만난 자리에서 그들이 이중과세 문제를 제기했다”며 “TSMC와 같은 업체가 미국으로 올 수 있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이날 의회에서 “(대만 기업에 대한 이중과세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재무부와 국무부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 의회에서는 이미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공화당 소속 토드 영 상원의원 등은 조세협정 체결을 권유하는 결의안을 지난달 공동 제안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미국과 대만의 이중과세 방지 협정에는 걸림돌이 많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대만과 협정을 맺는 것은 대만을 하나의 주권국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돼 중국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은 일본·영국·캐나다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을 포함해 34개국과 조세 관련 협정을 맺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이 협정을 맺었을 때는 지금과 같이 미중 갈등이 고조된 시점이 아니었다. 또 중국과 직접적인 패권 다툼을 하는 미국이 대만과 협정을 맺는 것은 영국·일본 등이 대만과 협정을 맺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