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가 빠르게 추락하는 것은 지방재정이 허약해진다는 의미지만 돈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에 자동으로 교부되는 돈이 쌓여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난방비 지원 등 각종 명목으로 현금 살포에 나서는 등 헤픈 씀씀이가 여전하다.
결국 문제는 부실해지는 재정 체력이다. 겉보기에는 예산집행에 어려움이 없지만 중앙에서 받은 보조금과 교부세로 채워진 예산안을 뜯어보면 지방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해 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고질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부동산 거래절벽에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지방채 발행 신중 모드, 경기 침체에 총선이라는 정치 이벤트까지 맞물려 내년에는 지방의 중앙 의존증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30일 서울경제신문이 통계청과 나라살림연구소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올해 17개 광역시도의 재정자립도는 46.2%로 지난해의 49.9%(세입 과목 개편 전 기준)보다 3.7%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자립도 악화가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니지만 지방의 자체 세입이 갈수록 축소되면서 내년에는 세입 과목 개편 후 기준으로도 최저점을 기록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세입 과목 개편으로 이월금·잉여금 등을 세외수입에서 제외해 하락 추세가 더욱 가팔라져 2021년 43.6% 저점을 기록한 바 있다.
특히 부동산 시장 악화는 지방세 부진의 주 원인으로 꼽힌다. 지방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방세는 부동산 재산 과세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2020년 결산 기준 취득세·재산세 등 재산 과세가 전체 지방세 수입의 45.9%를 차지했다. 앞서 한국지방세연구원은 2021년 33조 8170억 원을 기록한 취득세 세입이 내년에는 22조 3580억 원까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하반기부터 본격 적용될 지방세 개편은 지방정부의 자체 세입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 수 있다. 이미 12억 원 이하 주택의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의 취득세는 전액 면제되고 소득 기준이 사라졌다. 인구 감소 지역에 사업장을 설치하는 기업의 취득세도 면제된다.
중앙에서 내려주는 재원으로 예산 수요가 충당되다 보니 자체적인 세원 발굴 노력을 외면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집계 결과 올해 지방채 발행을 검토하는 곳은 부산시(2600억 원)와 광주시(240억 원), 대전시(1600억 원), 세종시(7억 원), 충남도(1000억 원), 제주도(700억 원) 등으로 전체 재정 비중의 0.4%에 불과했다. 지방세(46.4%), 보조금(37.8%) 비중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 자체 수입인 보전 수입 등 내부 거래(3.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부산·대구·인천 등이 지방채 발행으로 재정위기를 겪은 뒤 지방정부의 지방채 발행은 아예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이라며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도 지방채 발행에 신중해지는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보조금도 재정자립도 추락을 재촉하는 원인이다. 중앙정부가 정한 일정 비율의 대응 사업비를 수반하는 보조금은 그만큼 지방의 자율적인 재정 운용을 방해한다. 특히 경기 침체 상황이다 보니 자체 재정 운용보다 중앙 사업을 받는 편을 선택하는 현상은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새로 광역단체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시도지사들은 첫 예산안부터 보수적으로 편성하고 있다. 임기 초에 의욕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경기가 악화한 상황에서 예산도 과소 추계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앙정부에 습관적으로 손을 벌리는 지방정부 때문에 중앙정부의 돈 가뭄, 지방정부의 약골 체질이 고착화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