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 간 소송전이 국내로까지 번졌다. 한수원이 원자력발전 핵심 기자재인 원자로냉각재펌프(RCP)를 공급한 웨스팅하우스 등에 설계상 하자를 이유로 5억 원 규모의 부품 교체 비용 등을 물어내라고 청구한 것이 골자다.
5일 정부와 법원 등에 따르면 14일 대구지법 경주지원에서 제1민사부 심리로 한수원이 미 웨스팅하우스와 한전KPS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첫 변론이 진행된다. 한수원은 법무법인 세종에 법률대리인을 맡겼고, 웨스팅하우스는 김갑석 변호사를 비롯한 4인의 변호인단을 꾸렸다.
국내에서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원고와 피고 신분으로 법정에서 마주 앉는 것은 2013년 이후 10년 만이다. 이런 사실은 한수원이 지난달 31일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한 사업보고서를 통해 처음 외부로 알려졌다. 당초 7일로 잡혀 있던 변론기일은 미국에 본사가 있는 웨스팅하우스가 소장을 송달받아 검토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 기간을 주기 위해 일주일 미뤄졌다.
소송가액은 약 5억 원으로 양사 매출과 자산 규모 등을 고려할 때 큰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미 법정에서 지식재산권을 놓고 다퉈야 할 당사자들이 벌이는 전초전 성격이라 관심이 쏠린다.
한수원은 한전KPS가 미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제공받아 전남 영광 한빛원자력본부 내 원전시설에 설치한 RCP의 잦은 고장에 두 업체의 책임이 있다며 지난해 9월 우리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RCP는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원자로가 과열되지 않도록 냉각재를 순환시켜주는 장치인데 원전계측제어시스템·원전설계핵심코드 등과 함께 원전 3대 핵심 기술로 통한다. 지난해 12월 준공된 신한울 1호기를 통해 국산화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웨스팅하우스에 사실상 전량 의존했다.
한때 세계 1위 원전 기업이자 여러 원전 원천기술을 보유한 웨스팅하우스는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 도입 때부터 한수원과 인연을 맺어왔다. 그러나 국내 원자력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 각지에 수출을 추진하면서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도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다.
이번 소송은 웨스팅하우스로부터 들여온 RCP가 오작동을 일으켜 한수원에 금전적 손실을 초래하는 일이 반복된 것이 발단인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한빛 3호기는 2018년 4월 원자로 RCP 제어카드에서 결함이 발견돼 가동이 일시 중단된 바 있다. 이런 일이 재발하자 참다 못한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 등에 과실 책임을 묻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웨스팅하우스는 설계상 문제가 아닌 운영상 미숙한 점이 있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