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3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중동 최대 스타트업 행사 ‘비반(BIBAN)' 내 ‘드레이퍼 알라딘(Draper Aladdin) 스타트업 경쟁부문’ 대회 마지막날 밤 대망의 우승자를 발표를 앞두고 긴장감이 흘렀다. 스페이스X·스카이프·바이두에 투자한 드레이퍼그룹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모인 500개 스타트업 참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회자가 외쳤다. “Angel Swing(엔젤스윙).” 엔젤스윙은 2016년 박원녕 대표가 설립한 국내 스타트업이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우디로 날아간 또 다른 국내 스타트업 9개 팀은 함께 K스타트업의 수상을 축하했다. 엔젤스윙은 글로벌 VC 드레이퍼그룹으로부터 투자 유치를 약속 받고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엔젤스윙은 국내외 건설사에 정보기술(ICT)을 활용해 현장 가상화·관리·측량 및 안전관리 솔루션을 공급하는 기술기업이다.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 등이 주요 고객사다. 이외에도 시공능력평가 순위 20위 권 이내 기업의 80%(16개 사)가 전 세계 200여 개 건설현장에서 엔젤스윙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핵심 기술은 드론으로 촬영한 2D 사진 데이터를 3D 공간 데이터로 정확히 변환해 디지털 트윈(현실을 디지털 데이터로 옮겨놓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 토지 지반을 다지는 기초공사, 철근을 배근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골조공사 등 공사 과정 전반을 컴퓨터·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로 기록·공유·계획할 수 있다. 측량 솔루션의 경우 드론으로 촬영한 항공 데이터를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3D 측량 데이터로 자동 변환해 정확한 좌표와 고도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기존 4시간 가량 걸리던 작업을 5분 내외로 단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용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스케일업 비결은 ‘창업 멤버’
박 대표는 엔젤스윙의 성공 비결을 묻자 주저없이 “인재”라고 답했다. 엔젤스윙은 2016년 설립 당시 드론 개발·제작·판매 사업이 주 비즈니스 모델이었지만, 드론만으로는 매출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박 대표는 2017년 건설현장 관련 데이터 수집으로 피보팅(pivoting·사업 전환)했지만 곧 세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우선 일일이 사람이 드론을 날리고 데이터를 분석할 경우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었고, 자금도 충분치 않았다.
스타트업이 주로 봉착하는 이런 류의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박 대표가 영입한 세 명의 핵심 창업 멤버들이었다. 박 대표는 우선 서울대 로봇 동아리 ‘시그마’에서 활동하는 컴퓨터공학과 전공 재학생 2명을 영입했다. 이들은 2017년 회사에 합류해 2년 가량 일하며 2D 드론 사진 데이터를 3D로 자동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박 대표는 “개발자 2명이 초석을 놓으면서 지금의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며 “첫 기술 허들을 넘고나니 예상을 넘어설 정도로 프로젝트 진전 속도가 빨랐다”고 전했다.
또 다른 도약의 계기는 이지선 엔젤스윙 부대표(CSO·최고전략책임자) 영입이었다. 그는 창업 초기 닥쳤던 자금부족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코이카(KOICA) 창의적가치창출프로그램(CTS)에 지원해 3억 원의 지원금을 따낸 것. 엔젤스윙은 이를 토대로 2017년~2018년 코이카 프로젝트인 네팔 드론 모니터링 사업을 진행하면서 드론 솔루션 자동화 기술 개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직접 보여주니 열린 판로
엔젤스윙은 각고의 노력 끝에 2019년 초 드론 솔루션 자동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문제는 판로 개척. 이 부대표가 이 때 내놓은 아이디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설득해 ‘건설 현장 드론 세미나’를 공동으로 여는 것이었다. 드론 솔루션 자동화 기술의 혁신성과 필요성을 반신반의하는 고객사들에게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프리젠테이션을 열자는 제의였다. 신도시 등 각종 택지를 조성해 건설사에 공급하거나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사업의 시공 발주를 건설사들에게 맡기는 LH와의 세미나 공동 개최 효과는 컸다. 100여 곳에 달하는 건설사 관계자가 참석해 엔젤스윙의 제품 시연을 직접 목격했다. 박 대표는 “시연 세미나를 기점으로 고객사들의 문의가 이어지는 등 급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각종 스타트업 관련 대회에 적극 참여해 수상에 성공한 것도 고객사에 믿음을 주는 데 한 몫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엔젤스윙은 2021년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스마트건설챌린지’에서 건설 자동화 등의 부문 ‘최고기술상’(국토교통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는 창업진흥원(KSC)이 주관한 스타트업 경연 대회 '2022 KSC 데모데이' 행사에서 1위에 올랐다. 이 여세를 몰아 올해 중동 최대 스타트업 대회에서 1위에 올랐다. 박 대표는 “중동 스타트업 대회 이후 사우디 메가시티 프로젝트 현장 4곳에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드레이퍼를 포함해 2건의 투자유치 관련 협의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드론 솔루션, 재난 관리·농업환경 등 적용 분야 무궁무진
엔젤스윙의 중장기 비전은 뭘까. 박 대표는 “건설 분야에 쓰이고 있는 드론 솔루션 기술을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하는 기술을 확보한 만큼 태양광 설비 보수·유지, 재난 관리, 농업 환경 모니터링 등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엔젤스윙은 기술 적용 확대를 위해 무인으로 드론을 띄우고 관리할 수 있는 ‘드론 스테이션’ 개발도 마친 상태다. 박 대표는 “궁극적으로 구글 어스처럼 전 세계를 데이터화 해 지구를 실시간으로 컴퓨터 안에 가상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변화가 잦은 공간의 데이터를 실시간 반영해 사회 각 영역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서비스들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중동붐 타고 떠오르는 콘테크 시장
엔젤스윙이 현재 속해 있는 ‘콘테크’ 산업은 세계 각지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콘테크는 건설(Construction)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을 비롯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기술들을 건설 현장에 도입해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높이는 기술 개념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등에 따르면 콘테크 시장은 2019년만 해도 98억 달러(약 12조 477억 원)수준이었지만 2027년에는 약 291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대기업과 벤처캐피털(VC)도 콘테크에 점차 눈을 돌리는 추세다. 그동안 혁신이 상대적으로 더뎠던 건설 현장도 디지털전환(DX)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어서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건설 안전관리 수요가 더욱 늘어난 점도 혁신을 앞당기는 요인이다.
콘테크를 내세운 스타트업이 대규모 투자금을 조달하는 사례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3D 디지털트윈 솔루션 업체인 큐픽스는 지난해 말 16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받으며 화제가 됐다. 확보한 자금은 미국·유럽·중동 시장 진출에 투입할 계획이다. 큐픽스의 누적 투자금은 400억 원을 웃돈다. AI 스타트업 쓰리아이는 LB인베스트먼트, SV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누적 2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최근 유치했다. 이 회사는 기업 간 거래(B2B) 기반 디지털 트윈 솔루션인 '비모'를 제공하고 있다. 3D BIM(건설정보모델링) 설계도구 ‘빌더허브’를 개발한 창소프트아이앤아이와 건설인력 중개 플랫폼 ‘가다’ 운영사인 웍스메이트도 최근 VC로부터 각각 약 4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유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