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이예원(20·KB금융그룹)은 지난해 10월 30일 신인상 수상을 확정했다. 시즌 종료까지 두 대회를 남긴 때였다. 그날부터 이예원에게는 ‘우승 없는 신인왕'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우승 없이도 상금 랭킹 3위(약 8억 4900만 원)에 오를 만큼 압도적인 꾸준함을 뽐냈으나 ‘우승 없는’이라는 달가울 리 없는 표현과 함께해야 했다.
이예원이 161일 만에 ‘우승 없는’이라는 표현과 작별했다. 9일 롯데 스카이힐제주CC(파72)에서 끝난 롯데렌터카 여자오픈에서 이예원은 나흘 합계 6언더파 282타로 데뷔 첫 우승을 완성했다. 3언더파 공동 2위 박지영, 전예성을 3타 차로 떨어뜨리고 31개 대회 출전 만에 처음 트로피를 들었다. 우승 상금은 1억 4400만 원. 2년 차 시즌의 두 번째 대회 만에 첫 승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버렸다.
2위 그룹인 전예성, 박지영에 6타나 앞선 채 4라운드를 출발한 이예원은 6번 홀까지 7타 차 선두를 달리다 13번 홀에서 2타 차까지 쫓겼다. 지난해 준우승만 세 번인 이예원에게는 7타 차 리드도 통하지 않는가 했다. 13번 홀(파4)에서 1.5m 파 퍼트를 놓쳐 1승이 있는 4년 차 전예성에게 역전 기회를 내주나 싶었다. 지난 7개 홀에서 보기만 3개. 이예원은 그러나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았다. 14번 홀(파3·147야드)에서 쐐기 버디를 터뜨리면서 스스로 만든 위기를 걷어차 버렸다. 날카로운 티샷을 핀 1.2m 거리에 붙여 놓은 이예원은 앞선 파 퍼트 실패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 과감한 스트로크로 홀 한가운데를 뚫었다. 3타 차로 다시 달아난 뒤 더는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언더파를 친 선수가 아예 없을 만큼 바람의 심술이 가장 난폭했던 3라운드가 결정적이었다. 이예원은 그린을 열 한 번 놓쳤는데도 보기는 4개로 막고 2오버파로 선방해 우승 발판을 다졌다. 정교한 쇼트 게임과 퍼트 덕분이었다. 이예원의 스윙 코치인 이정용씨는 “호주 퍼스에서 두 달 간 겨울 훈련하는 동안 가장 신경 쓴 게 쇼트 게임과 퍼트였다. 40도가 넘는 더위에도 하루 12시간을 퍼트 연습만 한 날도 있었다”며 “부족하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무섭게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바람이 잦아든 최종일에 이예원은 페어웨이 안착률 93%의 안정감 넘치는 티샷을 뽐냈다.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마지막 홀에서 딱 한 번 러프로 보냈을 뿐이다. 스코어는 버디 2개와 보기 3개의 1오버파. 경기 후 이예원은 “우승 못한 데 아쉬움이 커서 전보다 더 열심히 훈련했다. 올해 전반기에 첫 승을 하고 싶었는데 국내 개막전에서 하게 돼 더 영광”이라며 “안전하게만 가려다가 중간에 보기가 좀 나왔다. 14번 홀부터 전략을 바꿔 과감하게 갔더니 원하던 결과가 나타났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싱가포르 대회 우승자인 통산 5승의 박지영은 올 시즌 우승-공동 2위로 출발이 아주 좋다. 이소영과 안선주가 1언더파 공동 4위에 올랐고 신인 김민별이 박현경, 안송이와 함께 1오버파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대상·최소타수상의 김수지는 5오버파 12위, 상금왕 3연패에 도전하는 박민지는 10오버파 공동 26위로 마감했다. 첫날 깜짝 단독 선두에 올랐던 신인 정소이는 19오버파 공동 54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