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리퍼블릭은행(FRC)이 미국 예금보험공사(FDIC)의 관리 체제로 들어간 후 곧이어 JP모건에 매각된다. JP모건이 최종 인수자로 낙점됐으나 이에 앞서 당국의 법정관리에 돌입하기로 하면서 FRC는 실리콘밸리은행(SVB), 시그니처은행 이후 올 들어 네 번째 미국의 은행 실패 사례로 기록된다.
FDIC는 1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JP모건이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예금 1039억 달러(4월 13일 기준, 약 139조 원)를 모두 인수하고 자산 2291억 달러어치의 대부분을 매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수 금액이나 세부 조건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애초 FDIC는 FRC를 압류해 파산관재인으로 재매각하는 방안보다 대형 은행들을 대상으로 민간 차원의 거래를 우선순위로 추진했다. 다만 JP모건을 비롯한 이날 입찰 참여 은행들이 모두 FDIC의 관리를 우선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파산 직후 매각’이라는 방식을 결정하게 됐다. 앞서 FT는 “입찰 은행 전원은 FDIC가 FRC에 대한 관리에 돌입하고 이후 거래에서 발생하는 잠재적 손실의 일부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이게 지금까지 제출된 유일한 제안”이라고 전했다. 이날 FRC 인수전에는 JP모건 외에 PNC파이낸셜서비스그룹·시티즌스파이낸셜그룹이 응했던 것으로 외신들은 파악하고 있다.
JP모건이 인수자로 낙점되면서 FRC는 마땅한 처리 방안 없이 파산으로 치닫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게 됐다. 고금리로 손실이 쌓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3월 말 기준 FRC가 보유한 대부분의 대출(1370억 달러)은 이자율이 낮을 때 실행된 단독 주택 모기지다. 배런스에 따르면 대출의 평균 수익률(대출 이자)은 3.24%에 불과하다. 현재 연방준비은행(Fed·연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이자율이 4.92~5.5%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금 조달 비용이 대출 채권에서 얻는 수익보다 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애널리스트인 수잰 로스카츠케는 “살아남더라도 FRC는 올해 주당 4.15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 손실로 환산하면 약 13억~15억 달러 규모다.
FDIC 입장에서도 FRC의 부실 우려가 번지거나 처리를 민간에 떠넘겨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금융 불안이 재점화할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FDIC가 보험기금 손실을 감수하고 FRC의 폐쇄와 관리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FDIC는 “FRC가 보유한 주거·상업 대출에 대한 손실을 JP모건과 함께 부담할 것”이라며 이번 인수로 약 130억 달러의 보험기금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SVB와 시그니처은행 폐쇄 당시 발생했던 손실은 각각 200억 달러, 20억 달러였다.
JP모건이 낙찰자로 선정되면서 인수 마무리를 위한 법적 절차와 해석에 대한 추가 검토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미국 연방 법률은 전국 예금의 10% 이상을 보유한 은행은 다른 예금 기관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위해 예외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해석과 이미 현행법상 실패한 은행의 경우 인수가 예외적으로 가능하다는 해석이 분분하다.
인수 가격과 인센티브도 관심사다. FDIC는 지난달 SVB를 퍼스트시티즌스에 매각하면서 720억 달러 규모의 SVB 자산을 약 80% 할인된 165억 달러에 매각했다. 아울러 추후 유동성 문제에 대비할 수 있도록 700억 달러 규모의 신용 한도도 제공했다.
시장은 JP모건의 인수 결정으로 SVB로 촉발된 1차 위기는 마무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안정을 위한 예일프로그램의 스티븐 캘리 선임연구원은 “FRC는 각 은행의 사업구조에 따라 벌어진 초기 혼란의 마지막 단계”라며 “지금은 한 은행의 붕괴가 다른 은행으로 전이됐던 2008년과 같은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다만 고금리로 인한 중장기적인 은행권의 수익성 압박은 여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FT는 “은행들은 현재 연준의 자금 대출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은행권 위험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글·사진(뉴욕)=김흥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