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권력의 심장부’인 크렘린궁을 겨냥한 드론 공격을 둘러싸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소행이라고 주장한 가운데 배후에 미국이 있다며 보복을 공언한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를 전면 부인하며 러시아의 공습에 대비한 방공망을 가동했다. 현재까지는 러시아의 자작극이라는 의견과 우크라이나의 도발이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임박한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가 어떻든 이를 계기로 확전이 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군은 4일 새벽 자폭 드론 24기를 동원해 키이우와 오데사 등 우크라이나 지역을 공습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남부군 사령부 관계자는 이 중 18기를 격추했다고 밝혔으며, 키이우 시 당국은 관내 3개 지역 상공에서 적 비행체를 요격하면서 파편이 10개 건물에 떨어져 차량과 도로가 일부 파손됐다고 전했다. 시 당국은 드론과 함께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도 키이우를 향해 발사됐으나 상공에서 모두 요격했다고 전했다. 앞서 전날 밤에도 우크라이나 전역에 약 1시간 30분간 공습경보가 울렸고, 키이우의 군사행정책임자인 세르히 폽코는 텔레그램에서 우크라이나 방공망이 러시아의 공습을 막아냈다고 밝혔다. 이틀에 걸친 공습에도 민간인 사상자는 없었다.
개전 이후 사라진 적이 없었던 러시아의 공습 위협이 특히 고조된 것은 3일 새벽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급습한 드론 두 대 때문이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드론이 크렘린궁 중심부 상공을 향해 날아오다가 15분 간격으로 폭파된다.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지만 자국 방공망이 이를 막았다며 “러시아는 적절한 시기와 장소에서 보복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는 푸틴이나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았다”며 러시아가 자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사건 당시 모스크바 교외의 거처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공격의 배후에는 분명히 미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테러 행위 결정은 미국이 내리는 것을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실행할 뿐”이라며 “미국이 종종 목표물을 지정하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음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배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해석이 분분하다. 싱크탱크인 전쟁연구소(ISW)는 “드론 두 대가 격추된 모습이 영상에 잘 담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며 “러시아가 더 광범위한 (병력) 동원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이번 공격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가 조만간 러시아에 대한 대규모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이 의견에 힘을 더한다. 러시아에 망신을 주려는 우크라이나의 도발이란 시각도 있다. 크렘린궁은 대통령 집무실, 관저, 상원 등이 위치한 러시아 권력의 심장부로, 이곳이 공격당했다는 것은 러시아 안보 능력의 허점을 뜻하기 때문에 이를 꾸며낼 이유가 적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 능력이 상당히 발전했다는 점도 근거로 꼽힌다. 군사 블로거인 다비드 첸초티는 “지난해의 선제 공격을 보면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를) 장거리 공격할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고 말했다.
긴장감은 이미 올라가고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고위 관리와 매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핵무기 사용 필요성, 징병 확대 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은 3일 우크라이나에 3억 달러(약 4000억 원) 규모로 무기를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지원되는 것은 155㎜ 곡사포 및 포탄,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로켓탄, 박격포탄, 대전차무기 시스템 등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지원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스스로 계속 방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며 “러시아는 오늘이라도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렇게 할 때까지 미국은 계속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