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디지털 대전환을 선도해나갈 법적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법 개정을 통해 마이데이터와 신기술 관련 규제가 완화돼 디지털 경제 성장을 견인하고 국민의 정보 주권을 강화하며 유럽연합(EU) 등 국제규범과의 정합성을 확보해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아울러 정보기술(IT) 역량이 뛰어나고 인공지능(AI)과 같은 신기술 분야에서 국내외 빅테크가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규범 논의를 선도할 기회를 맞았습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처럼 ‘데이터7(DATA7)’과 같은 국제적 데이터 협의체를 구성해 전 세계 데이터 활용, 개인정보 보호 논의를 주도하겠습니다.”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국민들은 데이터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통제권을 행사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맞춤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은 데이터 간 합종연횡으로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달 미국 출장에서 우리나라의 데이터 분야와 개인정보 관련 정책, 법·제도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뜨겁다는 것을 체감했다”면서 “지금까지는 미국과 EU가 개인정보에 관한 논의를 주도했다면 AI 기술 발전에 따른 전환기이자 혼란기인 지금부터는 우리나라가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 방향을 잘 잡는다면 글로벌 리더십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담=성행경 IT부장 saint@sedaily.com
고 위원장은 지난달 초 미국 실리콘밸리와 워싱턴DC를 방문해 세계 최대 프라이버시 전문가 협회인 IAPP 콘퍼런스와 조지워싱턴대·프라이버시미래포럼(FPF·데이터 프라이버시 관련 미국 싱크탱크) 공동 주최 행사에 참석해 한국의 개인정보 관련 정책·제도를 설명하고 빅테크 처분 사례를 소개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주요 개인정보 규제 기관 당국자와 면담도 진행했다. 그는 “행사장에 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참석하지 못하는 등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정책과 데이터 분야 등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뜨거웠다”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선도하는 개인정보 감독 기관으로서 높아진 위상에 뿌듯했다”고 방미 소감을 전했다.
고 위원장은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디디에 렝데르 EU 집행위원회 사법총국 장관을 면담하는 등 해외 개인정보 당국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해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EU와 다른 우리나라의 독특하고 유연한 개인정보 보호 체계와 실질적 정책 집행력이 국제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9월 개보위는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면서도 개인정보 국제규범을 선도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시행한다. 개정안을 통해 ‘개인정보전송요구권’이 도입된다. 금융·공공 등 일부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했던 마이데이터가 전 분야로 확산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됐다. 개인정보전송요구권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보유한 기업·기관에 해당 정보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요구하는 권리다. 이에 대해 고 위원장은 “신기술·신산업을 지원하는 개인정보 활용 기반을 강화해 새로운 데이터 경제 시대를 열고자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과징금 상한액을 현행 ‘위반 행위 관련 매출액’의 3% 이하에서 ‘전체 매출액’의 3% 이하로 높여 기업의 책임을 강화한다. EU와 영국은 전 세계 매출액의 4%, 미국은 FTC법에 따라 위반 개별 건당 최대 1만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고 위원장은 “기업의 투자 확대 등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예방적 보호를 함께 강화하려는 것”이라며 단순히 제재 강화의 의미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개보위는 지난해 9월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구글과 메타에 10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0년 중앙 행정기관이 된 개보위는 장관급 기구임에도 일반인들에게 생소했는데 빅테크에 대해 1000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구글과 메타는 이에 불복해 올 2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고 위원장은 “위원회의 처분은 국제적으로도 개인정보와 관련된 글로벌 빅테크의 부적절한 처리 관행에 제동을 건 주요 사례”라고 평하며 “소송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구글·메타를 대상으로 한 과징금 처분을 빅테크에 대한 규제 강화로 해석하는 것과 관련해 그는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대전제는 국민의 신뢰이며 규제 감독 기관은 기술에 대해 사회가 수용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면서 “빅테크 기업들과 대립 관계가 아니라 기술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조율자로서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 발전 과정에서 기업의 데이터 활용보다 보호에 치중을 두게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고 위원장은 “보호와 활용이라는 양자택일의 관점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면서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는 기업은 개인정보와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도 못 하고 활용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개보위가 미국 빅테크 등에 제재를 가한 것은 데이터 활용 자체를 막은 게 아니다”라며 “친목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 목적과 관련 없는 여러 형태의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고, 정보 수집·동의 여부를 이용자에게 제대로 고지했는지 조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규제 방향을 잘못 잡으면 유용한 기술의 개발을 저해시킬 수 있다”며 “AI와 데이터 같은 신기술 영역에서는 경직적이고 세밀한 규정보다는 규제의 원칙을 정하고 원칙을 현실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응용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보위가 개인정보와 관련한 법·제도를 어긴 글로벌 빅테크에 과징금 처분을 내린 데 대해 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실제 정보 유출로 피해를 본 개인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대해 고 위원장은 “과징금 제도는 유출 등 법 위반에 대해 공익의 수호자인 국가가 금전적 제재를 부과하는 것”이라며 “개인이 입은 피해 등 사인 간 분쟁은 민사적 절차를 통해 재판에 의한 구제를 받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개인정보 분쟁 조정 제도를 통해 비용 없이 신속한 피해 구제가 가능하다”며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소송의 대안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는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에 사실조사권을 부여하는 등 급변하는 데이터 환경에서 분쟁 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담겼다.
고 위원장은 “개인정보는 데이터 시대에 비즈니스 자원이 되고 있다”며 늘어나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개보위는 올해 각각 487만 명과 1만 3000여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한국맥도날드와 밀리의서재에 각각 과징금 약 7억 원을 부과하는 등 처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LG유플러스의 고객 정보 29만여 건이 유출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힌 가운데 개보위의 처분이 나오지 않아 그 결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는 “과기정통부 발표와 별도로 LG유플러스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에 초점을 두고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고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다크패턴(눈속임 설계)과 애드테크(광고 기술) 등 디지털 생태계와 관련한 7개의 핵심 분야를 선제적으로 점검해 위법 사항을 엄정 처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진행 상황에 대해 그는 “애드테크 영역은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고 있고, 그에 기초해 워킹그룹TF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며 “업계와 소비자들의 피드백 과정을 거쳐 한두 달 뒤 공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개인정보와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올리는 애드테크에 대해서는 “구글이 여태까지 쿠키를 가장 많이 활용한 기업 중 하나지만 앞으로 쿠키를 쓰지 않는 방향으로 선언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서도 조만간 가이드라인을 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쿠키는 웹사이트를 방문한 이용자의 컴퓨터에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텍스트 파일이다. 쿠키에는 로그인 아이디와 비밀번호, 접속 기록 등의 정보가 담겨 광고주들이 쿠키를 개인 맞춤형 온라인 광고에 활용해왔다. 구글은 크롬 브라우저에서 내년 말까지 쿠키 지원을 중단할 계획이다.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한 후 전 세계적으로 생성형 AI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AI 법·제도 전문가인 고 위원장의 이력도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인 그는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서울대 인공지능정책 이니셔티브 공동디렉터를 지냈다. 2021년에는 ‘AI는 인간에게 차별을 배운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챗GPT로 AI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AI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지만 디지털화가 심화하는 추세 속에서 새로운 도전이며 개보위에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AI 영역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제도를 설계할지는 단순히 국내 문제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미국·EU 등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데이터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고 위원장은 이어 “G7과 같이 DATA7과 같은 국제적 데이터 협의체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AI 등 신기술 관련 데이터·개인정보 보호 정책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포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