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회 문턱 못 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핏줄로 맺은 가정만 ‘건강’하다?

[2023 新가족 리포트]

건강가정기본법, 좁은 '가족' 개념 탓 개편 논의 지속

"혼인·혈연·입양 외 1인가구·다양한 관계 포괄 못해"

여가부, 지난해 '건가법 개정안 현행 유지' 의견 밝혀

사회 분위기 이미 변화…'가족 범위 확대' 65%가 긍정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달 26일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기본소득당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달 26일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기본소득당




우리나라 가족 제도의 기반이 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이 혼인과 출산을 중심으로만 가족의 형태를 규정하고 있어 다양한 가족 형태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늘고 있지만 건가법이 가족의 범위를 좁게 규정하고 있어 ‘규범 밖 관계’는 소외되고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개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게다가 혼인과 출산을 국민의 중요한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건강가정기본법 제8조는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건강가정’이라는 표현이 시민들의 다양한 삶을 ‘건강한 가정’과 ‘건강하지 않은 가정’으로 나누는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혼인과 혈연을 기반으로 한 가정을 ‘건강가정’으로 규정해 그것을 지향하는 것이 입법 취지인 탓에 이상적인 가족 개념과는 다른 다양한 가족을 건가법이 모두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소장은 저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통해 “건강가정기본법은 ‘건강가정’이라는 표현으로 생애주기에 대한 정상성 규범을 통해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수많은 차별을 정당화해왔다”며 “이성애 결혼과 혈연가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축으로 작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장민선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다양한 가족을 국가가 지원하겠다고 한다면 건가법이 다양한 가족을 포함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며 “건가법을 ‘가족정책기본법’ 또는 ‘가족지원법’ 등으로 개편하면 1인 가구나 생활동반자 관계 등 다양한 관계를 포용할 수 있으며 가족정책을 위한 기본법으로서 위상과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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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005년 10월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이름은 ‘건강하지 않은 가정’을 떠올리게 해 일부 가정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중립적인 법률명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놓기도 했다. 인권위는 2022년 4월에도 국회의장에게 재차 건강가정기본법 개정과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권고했다.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가족에 대한 인식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건강가정기본법의 제명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아 2020년 발의된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한편 가족 정책 소관 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현행안을 유지하는 의견을 밝혀 비판받은 바 있다. 지난해 9월 22일 여성가족부는 건강가정기본법의 가족 범위를 넓히겠다던 기존 입장을 번복하며 현행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여가부는 현재까지도 “‘가족’의 법적 개념 정의에 대한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추기 위한 취지”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사회 분위기는 이미 다양한 가족 관계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족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전통적 가족 감소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답변이 67.8%에 달했다. 법률적 가족 범위 확대에 대한 질문에서도 ‘약간 찬성’이 49%, ‘매우 찬성’이 15.6%에 달해 긍정 의견이 65%가량을 기록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를 수용하고 편견과 차별을 예방하기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조속히 심의·의결할 필요가 있다”며 “가족 구성에 대한 국민의 인식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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