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이 미디어아트와 만나면?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전시는 대개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 자체에 집중하며, 현대적 재해석이 들어갈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전시는 전통문화를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효과가 있으나 대부분의 전시가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관람객이 흥미를 잃기도 쉽다.
지난 4일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 시작된 ‘예술 입은 한복’ 전시는 한국 전통 복식 한복의 소재·문양·색·도안·형태 등을 탐구한 결과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주목 받는다. 이번 전시에서 권기수, 남경민, 다발킴, 양대원, 여동헌, 이설, 이수인, 이이남, 이중근, 이후창, 이희중 등 11명의 현대미술 작가는 한복의 전통적 의미를 유연한 창작성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62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2년여 전 한국한복진흥원의 제안으로 이번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한복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입는 한국의 역사, 문화, 정체성을 이해하는 주요한 도구다. 미술관 측은 “전통문화인 한복을 현시대에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각 세대간 한복에 대한 다른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로 11인의 작가는 드로잉부터 인공지능(AI)까지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한복의 멋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사진과 디지털 매체를 주로 이용하는 이중근은 자신의 얼굴을 AI 프로그램으로 작품 속에 배치한 후 전통춤 의상과 탈춤 동작을 패턴화 해 거대한 하나의 문양을 만들어냈다. ‘동구리’라는 캐릭터로 작품 활동을 이어온 권기수는 조선시대 관복의 흉배와 비단 댕기에 자수로 수놓은 작품에 ‘동구리’를 등장시켜 현대적 캐릭터가 적용된 전통 복식의 가능성을 선보인다.
그밖에 한복 소재의 단조로운 색과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활용한 시청각 설치작품(이설), 전통 장신구인 나비 노리개를 유리와 빛(네온)으로 구현, 기능미와 장식미를 강조한 설치작품(이후창), 백색 한복 도포를 캔버스로 활용한 미디어아트(이이남) 등이 미술관 미술관 2~3층 기획 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반긴다.
한편 미술관은 관람객들이 전통문화인 한복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관람객은 해설사와 함께 전시를 관람한 후 ‘배자(한복 저고리 위에 덧입는 소매가 없는 옷)’를 자유롭게 꾸며보는 ‘나만의 배자 만들기’와 한복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고 공유하는 ‘나의 한복 기억 일기장’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전시는 7월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