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 적자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올해 정부가 목표로 한 세금 수입이 얼마나 달성됐는지를 나타내는 ‘세수 진도율’ 역시 열악해지다 보니 세수펑크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1분기까지 세수진도율은 21.7%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다. 부진한 세수 흐름이 지속할 경우 연간 세수진도율은 87%에 그칠 전망입니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세수(400조5000억 원)의 13%인 50조 원가량이 덜 걷힐 수 있다는 얘기인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은 편성하지 않겠다”고 다시한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역대 정부에서 세수부족이 발생한 9차례의 사례 가운데 결손 규모가 적은 3번을 제외하고 6차례 모두 추경을 편성했습니다. 세수가 부족해지면 의례 추경에 나섰던 과거와 달리 추 부총리는 건정재정 기조 속에 예산 집행 효율화를 재차 강조했습니다. 추 부총리는 “민생 관련 당초 편성된 예산은 차질 없이 지출할 것”이라며 “그 재원은 지난번 결산 때 발생한 세계 잉여금과 기금의 여유자금, 연중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 확실시 되는 부분의 집행 효율화 등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세수 펑크에도 불구하고 적자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세입을 메꾸는 방안은 추진하지 않고 올해 예산에 편성됐지만 쓸 필요가 없게 된 예산 불용액을 끌어모아 모자란 예산을 보충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당장 정부 예산 집행 사업의 불용이 예상되는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에 착수했습니다. 불용이 예상되는 사업을 정리해 최대한 다른 사업으로 예산을 전용하는 방식인데요. 현재 기재부는 불용이 예상되는 사업 목록을 작성하는 작업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주목되는 것은 불용의 규모입니다. 지난해엔 12조9000억 원이었는데 해당 금액으로는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턱없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그 사이 재정상황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11일 내놓은 ‘재정동향 5월호’에 따르면 1분기 정부의 총수입은 145조4000억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5조 원이나 감소한 수치로 부동산 거래 감소 등으로 1분기 국세 수입이 24조 원이나 쪼그라든 영향이 컸습니다.
1분기 정부 지출 역시 186조8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6조7000억 원 줄었지만 수입 감소 폭이 워낙 큰 탓에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1분기 41조4000억 원 적자를 보였습니다.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해 정부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무려 54조 원 적자였습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올해 연간 관리재정수지 적자 전망치(58조2000억 원)의 92.8%에 육박하는 규모입니다. 물론 기재부는 4월과 7월 부가가치세가 걷히면 흑자로 전환되는 등 월별 관리재정수지는 크게 변동해 연말까지 세입현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까지 고려하면 세입이 크게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 연속 감소한 데 이어 5월 1∼10일도 144억85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0.1%(16억2000만 달러) 줄었습니다. 결국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1.5%로 하향조정했습니다.
나라 살림살이가 팍팍해질 게 명약관화하면서 눈길은 국회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30개월 넘도록 국회에 묶여 있는 재정준칙 법제화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KDI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효율적인 재정 운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지출 검토를 통해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고 향후 인구 고령화 등 재정 소요를 고려해 재정준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국회는 15일부터 이틀 동안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를 개최합니다.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재정준칙을 논의할 마지막 소위라는 게 정관계의 지배적인 시각입니다. 경제소위 소속인 여당 김영선·류성걸·박대출·송언석 의원과 야당 신동근·김주영·서영교·양기대·이수진·홍성국 의원에게 향후 나라살림의 명운이 걸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