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거대 야당이 강행 처리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했다.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 거부권 행사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번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脫)의료기관화는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와 함께 거부권 행사 이유로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숙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간호법은 의사 중심의 의료법에서 간호사를 분리해 규율하는 법으로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이 담겼으나 의사 단체와 간호조무사 단체 등은 직역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거세게 반발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겉으로만 의료 체계를 위하는 위선이고,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무능이고, 국회 입법권을 무시하는 오만”이라고 비난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 대통령이 약속을 파기했다”고 주장하면서 “간호법 제정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단체로 이뤄진 보건복지의료연대는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 행사에 400만 회원은 환영의 뜻을 밝힌다”며 파업을 유보했다.
의료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내세우면서 정치권과의 유착이나 집단행동을 시도한다면 의료 시스템은 흔들리고 국민 건강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 단체의 갈등은 정치권의 충동질로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헌신적인 희생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역량을 자랑하는 의료계가 표만 좇는 정치인들의 탐욕에 휘둘리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간호법은 다시 ‘국회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거대 의석을 앞세워 직역 간 쟁점을 그대로 둔 채 본회의에 직회부해 강행 통과시킨 민주당은 거부권 행사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입법 폭주를 반성하고 국민의힘과 재논의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여야는 정치가 국민 건강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고 숙의를 통해 간호법 갈등 해소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회는 앞으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와 의대 정원 확충 등 핵심 의료 과제 해결에 더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