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036460)는 매주 목요일이 되면 평소보다 달러 매수량을 크게 늘린다. 금요일과 주말에 지급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금요일과 주말에 써야 하는 3일 치 달러 물량을 목요일에 미리 매수하면 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가스공사 측의 설명이다. 금요일에 달러를 사들일 경우 그다음 주 월요일 기준의 원·달러 환율을 적용받아 그만큼 불확실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환 헤지는 LNG 대금 조달 시 지켜야 할 원칙”이라며 “목요일 달러 매수 시 금요일 오전 환율이 적용돼 금요일 매수보다 회계상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외환 당국인 기획재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특정 기관의 매수 물량이 목요일에 집중되는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 가스공사가 오히려 높은 환율에 달러를 사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달러 수요가 늘어나 환율이 오른 상황에서 달러를 사들이면 결국 가스공사도 손해를 보는 것”이라며 “분할 매수로 달러 수요를 분산시키면 가스공사와 외환시장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요일에 달러 수요가 몰리면 환투기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스공사의 달러 수요는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며 “환투기 세력이 이 같은 사실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환투기 세력에 취약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부의 분할 매수 제안은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문제는 가스공사가 정부 요청에 응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올겨울을 앞두고 LNG 가격이 상승세를 보일 경우 가스공사와 외환스와프 체결을 재추진하거나 달러 분할 매수를 다시 요청할 방침이다. 하지만 가스공사는 외환스와프와 달러 분할 매수 모두 환 리스크를 키울 수 있어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11조 원에 육박한 미수금은 가스공사가 정부 제안에 난색을 표하는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미수금은 가스공사가 요금으로 회수하지 못한 LNG 대금으로 지난해 에너지 수입 가격이 급등했지만 공공요금 인상이 지체되면서 눈덩이처럼 불었다. 가스공사는 올 3월 미수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배당을 강행하며 주주 반발로 홍역을 겪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스공사가 정부 요청대로 달러 분할 매수를 시도했다가 환 손실을 입을 경우 더 큰 주주 반발은 물론 경영진 배임 논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환 헤지가 명시된 내부 환거래 정책상 기존 관행과 다른 방식으로 달러를 사들이려면 외부위원이 포함된 재무위험관리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가스공사가 대형 로펌의 자문을 받으면서까지 정부의 외환스와프 체결 요청을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향후 정부와 가스공사 간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스공사가 환율 변동성을 낮추기 위한 정부 제안을 재차 거절하면 외환 당국의 환율 안정화 정책도 꼬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취임한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이 관료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정치인 출신인 최 사장이 부처 눈치를 보지 않고 공사 측 이해관계를 강력히 대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