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극심한 식품 인플레이션에 가격통제 조치를 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방식은 직접적인 가격상한제부터 부가가치세 폐지, 할인 캠페인 등 다양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생활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포퓰리즘성 정책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은 취약 계층 선별 지원 등을 우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 시간)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사라지다시피 한 직간접적 식품 가격 통제를 시도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는 지난해 밀가루·설탕·육류 등 주요 식품 가격에 상한선을 뒀다. 포르투갈은 지난달 필수 식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하·폐지를 단행했으며 스페인·폴란드는 이미 지난해 같은 조치를 도입했다. 프랑스는 3월 주요 슈퍼마켓 체인들과의 협약을 통해 3개월 동안 필수 식품 가격을 할인했고 그리스는 소매 업체에 대해 식품 판매 마진 상한선을 설정했다.
이 같은 가격 통제가 부활한 것은 유럽의 심각한 식품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유럽연합(EU) 통계청인 유로스태트에 따르면 지난달 EU의 식품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6.6% 뛰었다. 7%인 유로존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2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설탕·유제품·올리브오일 가격은 1년 사이 각각 54.9%, 24.8%, 23.6%나 뛰었다. 블룸버그통신은 공급망 혼란과 에너지 위기에 따른 생산비 증가,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뭄, 조류인플루엔자 등 여러 요인이 식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생산 업체들이 과도하게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정부의 가격 통제를 압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사 알리안츠는 식품 원자재 값이 하락했는데도 식품 가격은 치솟는 현상과 관련해 기업들이 지난해 전쟁으로 발생했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일부 상품의 가격을 과하게 인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앙겔 탈라베라 옥스퍼드이코노믹스 분석가는 “식량 인플레이션은 (가계에) 실질적인 피해를 준다”며 “특히 선거와 시기가 겹치면 사람들의 불만은 더 커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가격 통제의 효과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취약 계층 지원 등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헝가리의 경우 지난해 초 가격상한을 도입했음에도 지난달 식품 가격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38.5%에 달했다. 괴지 머톨치 헝가리 중앙은행 총재가 지난해 12월 의회 청문회에서 “가격상한과 유사한 모든 아이디어는 이미 사회주의 시대 때 효과가 없음이 입증됐다”며 정책 수정을 요구한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도 최근 보고서에서 가격 통제로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며 취약 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